“내게 맡겨진 인생을 끝까지 책임져야지”

옥당골칭찬릴레이 - 모금순 / 묘량면

2004-10-29     박은정
가을바람이 쌀쌀한 오후, 집 앞뜰에서 베어 놓은 콩을 털고 있는 모금순(74)씨. 그는 언듯 보기에도 몸이 많이 불편해 보이고 함께 한 삶 또한 무척 지치고 힘겨워 보였다.“뭐하러 왔어 남부끄러우니까 어서 가”라며 취재를 한사코 반대하는 그의 곁에 쪼그리고 앉아 하나 둘 지나온 세월을 챙겨 들었다.

군서에서 큰딸로 태어나 10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소녀가장이 돼 집안 일을 돕던 그는 18살 되던 해 당시 4살 위인 2남3녀의 장남인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해 반세기가 넘는 56년 동안 묘량면 영양리에 살고 있다.

“원래 눈이 안 좋았는데 그이가 60살 되던해부터 눈이 아주 안보여 앞을 전혀 볼 수가 없었어”라며 “나도 다리가 아파 맘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영감과 겨우 끼니를 챙겨 먹으며 그냥 그렇게 살아 ”라고 내뱉는 그의 푸념엔 지나온 인고의 세월이 그대로 베어 있었다.

그는 이처럼 시력을 잃은 남편을 18년간 손과 발이 돼 성심껏 돌봄은 물론이고 2남5녀의 자녀를 키우며 홀로 지내던 시아버지가 새로 맞이한 시어머니의 괴팍함에도 평생 말대꾸 한번없이 지극정성으로 모셔왔다. 또 이렇게 어려운 형편에서도 묘지관리를 정성껏 하며 조상을 모시는 일에도 소홀함이 없어 마을에서 칭찬이 자자하다.

마을의 한 주민은 “모 씨는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고생하고 힘들었어도 밖으로 어렵거나 싫은 내색 하나 하지 않는 조용하고 얌전한 사람이다”며 “부모에는 효를 다하고 남편에게는 정성을 다하는 그는 보기 드문 효열자다”고 높이 평가했다.

다리가 많이 아파 지팡이가 있어야 거동을 하고 모진 세월을 혼자 감수하고 삭히느라 얻은 위장병으로 음식을 잘 섭취하지 못해 몸이 많이 쇠약해진 모 씨는 지난 추석을 며칠 앞두고는 쓰러져 병원에 입원을 하는 등 최근 건강이 더욱 안좋다. 앞을 못 보는 남편도 지병으로 당뇨를 앓고 있어 두 노인의 생활이 말이 아닌 상황이다.

객지에 있는 자식들은 이런 부모를 모시려고 하지만 도시생활이 싫다는 남편의 뜻을 따라 모 씨는 힘든 생활을 하며 고향을 지키고 있다. 이제 70을 넘어 80을 바라보고 있는 연로한 나이임에도 남편의 뜻을 따르는 그의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 부부들에게 좋은 가르침을 남겨주고 있다.

어쩌면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생활이지만 어느 바른 양서에 나오는 명언보다 값지고 소중한 교훈을 남겨주는 그런 ‘어머니’ 모금순씨. 우린 그의 이마주름에 깊이 새겨진 지난 세월 고통과 외로움의 무게를 관심을 갖고 조금씩 덜어주어야 될 것 같다. 조금이라도 황혼을 편히 쉴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