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마천의 <사기>의 명구를 통해 배우는 삶의 지혜32 - 인재가 알파요 오메가 ④

인재는 대접하고 필요한 곳에 쓰라

2013-10-31     영광21

사마천은 인재를 대접하는 문제에 대해 흥미로운 일화 하나를 소개하고 있는데 기원전 6세기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재상이었던 안영(안자)이 숨은 현자 월석보에게 혼이 난 이야기이다.
어느 날 길을 가던 안자가 온몸이 오랏줄에 묶인 채 죄수를 태우는 수레에 갇혀 끌려가는 숨은 은자 월석보를 봤다.

안자는 황급히 관아에 요청해 속죄금을 내고 월석보를 풀어주게 한 다음 자신의 집으로 모셔왔다.
그런데 이후 안자는 이런저런 바쁜 일 때문에 월석보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 오랜만에 안자의 얼굴을 본 월석보는 당장 두사람의 우의를 끊겠다고 선언했다. 영문을 모른 채 어리둥절해 하는 안자에게 월석보는 이렇게 말했다.

월석보에게 혼이 난 안영
“듣자하니 ‘군자는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굽히지만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뜻을 펼친다’고 합니다. 내가 묶여 있을 당시 나를 묶었던 포졸들은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느끼고 깨달은 바가 있어 속죄금을 내고 나를 구했으니 이는 나를 안다고 뜻이지요. 하지만 나를 알면서 무례하게 대한다면 이는 묶여 있을 때보다 더 못한 것 아닐런지요?”(권62 관중안영열전)

이 말에 안자는 깨달은 바가 있어 두말 않고 큰 손님에 대한 예의로 월석보를 우대했다고 한다. 천하의 안자도 한순간 사람 대접을 소홀히 했다가 혼쭐이 난 것이다. 여기서 월석보가 한 ‘군자는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굽히지만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뜻을 펼친다’는 대목을 음미해 보기 바란다.

그 뒤 안자는 자신의 수레를 모는 마부를 전격 기용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런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재상의 수레를 몬다고 거들먹거리던 마부가 어느 날인가부터 품행이 단정해지고 겸손하게 변해 있었다. 사연인 즉슨 마부의 아내가 재상의 마부는 마부가 아니냐며 남편의 오만한 태도를 지적하며 이혼을 요구해 마부의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요즘 같았으면 마부의 아내를 스카웃했겠지만 안영은 아내의 충고를 받아들여 개과천선한 마부를 높이 평가했다.

인간관계도 그렇지만 인재 문제라면 특히 그렇다. 알아주는 것만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알아줬으면 그 사람을 대접하고 필요한 곳에 써야 한다.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말도 인재를 알아 적소에 기용했을 때 설득력을 가진다.

동양의 전통적인 인재기용의 단계는 대체로 지인知人 - 용인用人이었다. 그런데 이 단계를 차분히 음미하고 살펴보면 제대로 부각되지 않았지만 반드시 필요한 몇단계가 더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기용한 인재를 아끼는 ‘애인愛人’과 보다 나은 인재를 키우는 ‘육인育人’ 내지 ‘배인培人’의 단계가 그것이다. 지인 - 용인 - 애인 - 육인에 이르는 단계는 오늘날에 있어서도 반드시 실천해야 할 인재관이라 할 수 있다.

인재 스카웃 경쟁의 시대
세계가 인재를 스카웃하기 위한 무한경쟁시대로 돌입한 지 오래다. 비단 오늘날뿐만 아니다. 인재기용의 가장 중요한 원칙을 이야기하면서 ‘인재를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라든가 ‘인재가 흥망성쇠를 결정한다’는 말을 했듯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재를 모셔오기 위한 경쟁은 정도의 차이만 있었지 그 본질은 같다.

사마천이 <사기> 곳곳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인재 문제도 인재를 알아보고 그 인재를 모셔와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방법의 문제이다. 특히 춘추전국이라는 기회의 시대에는 오늘날과 너무 흡사하게 인재 모셔오기 열풍이 불었다.

인재 유출 때문에 크게 낭패를 보거나 실패하거나 나라를 망친 경우도 적지 않다. 그 시대는 새로운 계층이 사회를 주도하는 등 인간의 가치가 극대화됐던 시기였기 때문에 인재 경쟁 또한 정말 치열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서 다음 호에서는 중요한 인재를 어떤 극적인 방법으로 기용하고 붙들었는지 흥미로운 일화를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