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전쟁, 항우는 왜 실패했나
■ 사마천의 <사기>의 명구를 통해 배우는 삶의 지혜36 - 인재의 유출 ①
우리는 앞서 인재 문제와 관련해 유방의 삼불여三不如를 소개한 바 있다. 중복되는 감은 있지만 잠시 그 장면으로 되돌아가보자.
초·한전쟁에서 승리한 유방은 황제로 즉위한 다음 낙양의 양남궁에서 술자리를 베풀어 대신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이 자리에서 유방은 삼베옷에 세자짜리 검 하나만 달랑 들고 항우와 천하를 다툰 끝에 “내가 천하를 얻은 까닭과 항우가 천하를 잃은 까닭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같은 고향 출신인 왕릉 등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오만해 남을 업신여기고 항우는 인자해 남을 사랑할 줄 압니다. 하지만 폐하는 사람을 보내 성을 공격하게 해서 점령하면 그곳을 그 사람에게 나누어줌으로써 천하와 더불어 이익을 함께 하셨습니다.
반면에 항우는 어질고 능력있는 사람을 시기해 공을 세우면 그를 미워하고 어진 자를 의심해 싸움에서 승리해도 그에게 공을 돌리지 않고 땅을 얻고도 그 이익을 나눠주지 않았습니다. 항우는 이 때문에 천하를 잃었습니다.”
그러자 유방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유방의 조롱
“그대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장막 안에서 작전을 짜서 천리밖 승부를 결정짓는 걸로 말하자면 나는 장자방(장량)을 따르지 못한다.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다독이며 양식을 공급하고 운송로가 끊이지 않게 하는 일이라면 나는 소하를 따르지 못한다. 백만 대군을 모아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고 공격했다 하면 기어코 빼앗는 일에서는 내가 한신을 따를 수 없다.
세사람은 모두 걸출한 인재로서 내가 이들을 기용했기 때문에 천하를 얻은 것이다. 반면 항우는 범증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제대로 쓰지 않았기 때문에 내게 덜미를 잡힌 것이다.”(권8 고조본기)
유방이나 공신들은 초·한전쟁의 승패 원인에 대해 나름의 인식을 보였지만 한결같이 인재의 포용과 대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유방이 다양한 인재를 초빙하고 이들의 능력과 지혜를 잘 활용했기 때문에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었다고 본 것이다. 특히 유방은 각 방면의 인재들이 제 몫을 해낼 때 성공할 수 있음을 잘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저 유명한 유방의 ‘삼불여’, 즉 ‘(나는) 세 사람만 못하다’라는 인재관이 나왔다.
유방은 자신이 소하, 장량, 한신만 못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이 세사람을 자기 밑에 두고 부렸기 때문에 항우를 물리쳤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러면서 항우는 범증이라는 훌륭한 인재를 갖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는데 이는 비판에 앞서 차라리 항우에 대한 조롱이었다. 인재를 데리고도 대우하지 않고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을 리더의 리더십 문제로 간명하게 정리한 것이다.
항우가 놓친 인재들
항우에 대한 유방이 조롱은 그저 한때 라이벌이었던 상대 리더에 대한 험담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유방은 당시 분위기상 범증 한 사람만 거론했지만 기록을 면밀히 검토해 보면 범증 외에 항우가 놓친 인재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항우 밑에 있다가 항우를 떠난 다시 말해 항우가 놓친 인재들로는 우선 진평陳平을 꼽을 수 있다. 진평은 오늘날 하남성 북부 개봉 부근의 양무라는 곳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양무는 전국시대 위나라 땅으로 훗날 유방이 항우와 격전을 벌였던 요충지였다. 진시황이 죽고 천하가 혼란에 빠지자 진평은 위왕으로 추대된 위구 밑으로 들어가 난세에 휩쓸리게 된다. 하지만 전투중 부상을 입고는 항우(처음에는 항우의 숙부 항량)에게 몸을 맡기게 된다.
항우 밑에서 진평은 큰 활약을 보여 도위에 임명되지만 자신이 점령한 땅을 유방에게 빼앗겨 항우의 분노를 사게 된다. 목숨에 위협을 느낀 진평은 다시 도망쳐서 위무지의 추천을 받아 유방을 만나게 된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유방을 만난 진평은 일부러 머뭇거리며 자리를 뜨지 않고 있다가 유방과 독대해 천하정세에 관한 자신의 구상을 이야기해 유방의 눈에 들게 된다.
예의없지만 아낌없이 주는 유방
유방은 진평을 파격적으로 우대했다. 이런 파격적 대우에 대해 유방의 측근들이 불만을 품고 진평을 중상모략했지만 진평은 그 때마다 정면으로 유방을 만나 오해를 풀고 더 큰 신임을 얻고 마침내 핵심참모가 돼 위기때마다 기발한 계책을 내고 상황을 타개하는 큰 공을 세웠다.
그렇다면 진평은 왜 항우를 버리고 유방에게로 왔을까? 이에 대해서는 진평이 유방 앞에서 직접 두사람의 리더십을 비교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그 요지는 이렇다.
항우는 사람을 아끼고 공경하기 때문에 지조있고 예를 차리는 인재들 대부분이 항우에게로 귀순했지만 벼슬과 봉지 그리고 상을 주는데는 인색해 인재들이 전적으로 그를 가까이 하지 않는다.
반면 유방은 예의를 무시하기 때문에 청렴하고 절개있는 인재들은 꺼린다. 하지만 벼슬과 봉지는 아낌없이 주기 때문에 이익을 밝히는 자들이 대부분 유방에게로 몸을 맡긴다. 따라서 두사람의 장단점을 취사선택하면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
진평은 항우 밑에 있어봤고 또 유방에게 와서 갖은 중상모략에 시달리며 유방 진영의 장단점을 파악했기 때문에 두 진영의 상황을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진평은 유방에게 부족한 점, 즉 청렴하고 절개있는 인재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적절한 예를 갖추는 유인책을 건의한 것이다.
그리고는 항우 진영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계책을 제시하는데 인재를 잃으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대목은 다음 회로 넘긴다.
김영수 센터장
영광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