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소식에 정을 듬뿍 담아 전했지”
백형봉 / 전 우편집배원
우체국의 상징인 빨간 제비마크가 새겨진 점퍼를 입은 백형봉(62)씨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아직도 우체국 옷을 입느냐는 질문에 “그래도 이 옷이 가장 따뜻하다”며 머쓱해하는 백씨. 그는 30여년동안 우편집배원으로 염산, 대마, 영광읍 등에서 많은 얼굴들을 만났다.
2011년 정년퇴임한 그는 소규모로 농사를 지으며 누구보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30년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 우편집배원이 아직은 배울 것이 더 많은 3년차 초보농사꾼이 된 것.
그는 “주변에서 명함을 만들라고 해서 하나 만들었다”며 ‘햇님달님농장’이라고 새긴 아기자기한 명함을 수줍게 내민다. 지난해 집에서 먹으려고 지은 고구마 농사가 생각보다 잘돼 서울지역에 사는 친척들에게 판매했던 것이 호응이 좋아 올해에는 500평을 지어 직거래로 판매했다.
백씨는 “올해 수확한 고구마도 다 팔고 없는데 요즘도 ‘고구마가 더 없냐’고 찾는 전화가 종종 온다”며 “취미로 농사를 짓는데 수익도 제법 있어서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는다.
“실업자가 더 바쁘다”는 그의 말처럼 퇴임후 후유증을 겪을 여유도 없이 바쁘지만 가끔은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던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고.
그는 우편을 배달하는 일이 직업이었지만 만나는 사람들을 한 가족처럼 생각하며 가장 편한 심부름꾼을 자처하기도 했다.
백씨는 “대마면에서 있을 때는 함께 일하던 집배원들이 각자 사비를 털어 휴대용 혈압측정기를 구입해 가지고 다니면서 멀리 병원에 자주 나가기 힘든 어르신들의 혈압을 체크해 주기도 했다”며 “또 크리스마스와 같이 특별한 날에는 마을회관 등에 라면과 같은 먹을거리도 선물했다”고 회상한다.
우체국 복장을 하고 있어서 선물을 받은 주민들은 우체국에서 선물한 것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백씨가 사비를 털어 구입해 선물한 것이었다.
백씨는 “마당에 감나무가 있는 집에서는 감을 한봉지 가득 따서 주기도 하고 마을회관 등에서 밥을 해 먹는다고 꼭 점심을 먹으러 오라고 전화하는 등 모두 한 가족과 다름없이 생활했다”며 “어르신들이 병원에 가는 등 일이 있을 때는 택시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말한다.
이처럼 단순히 우편물을 배달하는 것이 아닌 사람들과 소소한 정을 나누고 심부름꾼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에게 우편집배원을 감축한다는 소식은 참 안타깝다. 우편량과 시간, 거리만을 정확히 재서 감축목표를 세운 그들의 계산에는 ‘정’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우편집배원은 단순이 우편물을 배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정을 전하는 것인데···”라는 그의 아쉬움속에는 그의 30년 세월도 녹아있다.
이서화 기자 lsh122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