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이 안되면 건전한 상쟁을 하라

2004-11-18     영광21
2주일에 걸친 파행을 끝내고 가까스로 정상화된 국회가 또 다시 여론의 도마위에 올라섰다. '상생'을 표방하며 시작된 제17대 국회는 막말과 욕설, 삿대질, 고함, 인신공격 등이 절정에 다달았다.

사실 상생의 정치는 어려운 것이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간에 상생이란 그 자체로 모순된 개념일지도 모른다. 열린우리당은 개혁드라이브로 인한 조급증을 느끼고 있고, 한나라당은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위기감에 휩싸여 이성적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상생을 하려면 서로 양보를 해야 하는데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양보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정당의 속성상 상생이 어렵다면 페어플레이를 통한 상쟁도 좋다. 서로에게 지킬 것은 지키고 인정할 것은 인정한다면 상쟁도 생산적인 과정이 될 수 있다.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분명히 이야기하고, 국민의 지지를 구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모든 권력의 원천인 국민들은 마땅히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생도 좋고 상쟁도 좋지만, 여기에는 결코 간과해서는 안되는 대원칙이 있다.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고, 당리당략이 있을 수도 없다. 알다시피 현대전은 대량살상을 동반한다. 더구나,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곧바로 핵전쟁을 의미할 수도 있다. 만일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너무나 뻔하다.

그런 의미에서 LA를 방문 중인 노대통령이 "미국의 무력정책, 대북봉쇄정책에 대해 분명한 선을 긋고, 대화를 통한 평화적 북핵문제 해결원칙을 밝힌" 것은 한국의 대통령으로서 정당한 발언이었다.

특히, 부시의 재집권이후 승리에 고무된 네오콘(신보수주의)들의 정책조정기를 맞아 북핵해법을 미국에 제시한 것은 시기적으로도 매우 적절한 것이었다. 그것은 한반도가 미국의 정책실험장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의지의 표명이자, 민족의 생존과 번영에 대한 자존을 선언한 것이다.

이런 노대통령의 발언조차 정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 앞에 도대체 국회의원들의 국적은 어디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의 정적들은 서로 앞다투어 LA 발언을 ‘북핵불감증’을 드러낸 폭탄선언이라고 비난한다. 아마도 한미동맹관계보다는 북한 측의 논리를 대변했다는 것에 대한 불만인 듯 하다. 영원한 한민족 전체의 운명보다 날이 새면 바뀔 수 있는 동맹에 비중을 둔 웃지 못할 서글픈 현실인 것이다.

노대통령의 발언을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북핵문제에 대한 한미간의 긴밀한 협력을 강조한 것인데 왜 북한측의 논리를 대변했다고 하는지 필자는 알 수가 없다. 네오콘은 레드라인(red-line : 북한이 핵물질을 제3자에게 넘기면 강경조치를 취하게 되는 한계선)까지 설정하여 대북압박에 여념이 없는 마당에 건전한 상식을 가진 한국의 정치인이라면 마땅히 한마디쯤은 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 말이 정쟁의 대상이 됐으니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국지적 분쟁해결수단에 불과하겠지만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 보면 공멸의 위기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이렇게 민족의 생존이 달린 문제를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한계선을 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