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우리나라 가축 질병관리의 문제점
작년 11월 중순경부터 전국 곳곳을 맴돌던 AI 감염현상이 연말을 전후해서는 소강상태인 듯 싶더니 올해 2월 들어 이곳저곳에서 추가로 AI 감염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줄기차게 추진해 온 방역활동에도 불구하고 청정지역으로 알려진 영광지역 관내에도 AI 감염이 확인됐다.
수많은 날을 밤낮없이 사료를 주고 물도 주고 배설물을 치우면서 정성을 다해 키우던 오리 2만7,000여수를 감염이 확진됐거나 혹은 예방적 차원에서 살처분을 실시했는데 이는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예방적 살처분 방침을 끈질기게 추진해오던 당국이 많은 지자체들의 선택적 살처분 건의와 주장으로 마지못해 한걸음 물러섰는데 그동안 정부의 방역활동과 살처분 조치는 그에 따른 과도한 예산의 지출과 2차, 3차피해, 살처분 작업 인력의 복지, 동물보호 단체의 계속적인 문제제기가 일단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무엇보다 가축 질병방역 지침상 강제 살처분 대상인 500m를 벗어난 지역에 대한 살처분 명령은 어디까지나 지자체가 결정할 몫으로 정해져 있다는 명분도 사실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럼에도 당국의 한발 물러선 이번 결정은 참으로 일관성과 형평성을 유지해야 하는 측면에서 보면 신뢰를 상실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그동안 예방적 살처분이 지나치다는 사면초가적인 지적이 있었지만 당국이 지정한 질병에도 사실 안전하다고 할 수 있는 청정복지 농장까지 살처분을 강행한 정부였기에 더욱 그렇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정부가 왜 이 같은 결정을 내렸을까? 안타깝지만 보상금으로 인한 정부재정과 지방 선거를 앞둔 정치적 상황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에 정부재정은 지난해부터 바닥을 보인 가운데 급기야 올해는 세금추징을 통해 예산을 확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AI 살처분 보상금을 비롯해 사육농가들의 수매요구까지 수용하게 되면 대략 2,000억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한 실정이다.
과거에도 AI 수습과정을 보면 보상금 이외에 수매자금이 투입된 경우 올해처럼 선거를 앞둔 정치적 배려가 작용한 사례가 있었다. 어쩌면 이 같은 수순으로 보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재정상의 부담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킨 오해를 배제한다는 차원에서 방역지침을 포기하는 것 같은 모양새로 보여지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는 가축질병이 발생하면 언제나 일관되게 국가적인 차원에서 강력한 초동방역을 강조해 왔고 축산농가도 다소간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여기에 적극 동참해 왔다. 하지만 이번 결정은 재정상 압박을 타개하기 위한 궁색하기 짝이 없는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러한 정부의 변명을 두고 신뢰와 일관성을 상실한 정치적 조치라고 지적해 두고 싶다.
정 병 희
전 굴비골농협 조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