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걷이 끝난 농촌마을 꽹과리 소리 강강술래로 덩실덩실 ♬♪

백수들녘 휘어감은 다양한 문화체험·

2004-11-18     영광21
깨갱깨갱, 상쇠의 꽹과리 소리와 선창자의 매김소리에 맞춰 손에 손을 잡고 가앙가앙수월래~, 다섯살배기 꼬맹이도,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도, 말끔한 정복차림의 수녀님도, 팔팔한 삼사십대 늙은 소녀(?) 들도 강강수월래에~ 신나게 흥겹게 어깨 짓 흔들흔들 가앙가앙수월래

우리 마을에서 열린, 찾아가는 마을 문화축제가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에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은 듯 마음이 너무 가벼워 훨훨 날고 싶었다. 작년 마을축제는 작은 마을에서 열었기에 오붓하고 정겨웁게 행사를 치뤘지만, 우리마을은 그 규모가 너무 컸다. 200여호가 넘는 큰 마을이고 상가가 형성돼 있어 살아가는 모양새가 여러 가지라 화합이 잘 안돼 있다. 그래서 이번 마을축제를 계기로 사람들이 함께 하는 좋은 자리가 됐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안고 일을 추진하기로 했다.

마을부녀회와 함께 힘을 합하기로 하고, 문화적으로 소외돼 있는 농촌마을 사람들에게 다양한 문화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몇 차례의 준비모임이 꾸려졌다. 그리고 보여주는 것만이 아닌 함께 참여하는 축제의 장이 되도록 마을 주민들의 장기자랑 순서와 마을 여성들의 추억의 사진전도 열기로 계획했다.

그 준비는 내가 담당해 집집마다 방문해 예전모습이 담긴 사진과 근래에 찍은 사진을 모으기 시작했다. 빛바랜 흑백사진속의 예쁜 새색시는 지금은 호호할매가 돼 있고, 사는 것이 바빠 잊고 지냈던, (묵은 먼지 속에서 찾아낸)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지아비를 새삼 기억해 내는 지어미들의 회한어린 얘기들도 함께 나눴다.

준비기간 동안 노인들의 외로움을 새삼 체험하기도 했다.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가 전시회에 대한 설명을 해드리면 그 내용은 듣는둥 마는둥 하면서도 찾아줘서 고맙다며 내손을 붙들어 그것이 홀로 사는 외로움 때문이라는 걸 알기에 금방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여러 날이 지나고 행사 전날인 어젯밤에 많은 비가 내렸다.

학교 운동장에서 행사를 열기로 했는데 너무 걱정이 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비는 다행히 그쳐주었으나 걱정스런 마음에, 날이 새자마자 학교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운동장엔 물이 군데군데 고여 있었으나 곧 마를 것 같아 보였다. 행사가 오후에 열리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시간이 다가오고 준비 모임팀은 무대를 꾸미고 고정희 시화전과 마을여성 사진전시회를 준비하는데 아뿔사~!!! 오늘의 복병, 세찬 바람을 만났다. 비온 뒤끝의 바닷바람은 너무도 거셌다. 바람은 불고 불어오고 또 불어댔다. 시화전 준비하다가 우리들 모두 지쳐버렸다.
그럭저럭 모든 준비를 끝내고 시간이 다가와 삼삼오오 마을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마을축제의 시작이 선언됐다.

우리고장 농가주부모임 풍물패의 길놀이를 시작으로 바이올린합주, 진도북춤과 나주여성농민노래극(논두렁·밭두렁), 성악, 초등학생들의 음악줄넘기공연, 마을주민의 각설이공연, 목포여성의전화 노래패 <세딸기(세상의 딸들아 기를 펴라)>의 신나는 노래들, 그리고 함께하는 강강수월래~

여러 문화를 경험하지 못한 마을주민들이 조금이나마 직접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건 조금 따뜻한 날에 했더라면 하는 마음이다. 세찬 늦가을 바닷바람이 공연자들과 구경나온 마을사람들 모두를 웅크리게 해, 신나는 축제를 즐길 수 없게 만들었기에…

조금은 미숙한 부분도 있었으나 함께하는 문화축제가 되도록 여러날 애쓴 여러 사람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특히 많은 사람이 살기에 서로 융화되지 못하는 마을주민들이 이번 축제를 구실로, 공통의 얘기꺼리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좋은 계기가 됐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램이다. 조금 힘은 들었으나 축제가 잘 마무리 되어 모두에게 감사한다.

한나절 내내 우리를 힘들게 했던 매서운 늦가을 바람에게도, 함께 한 마을사람에게도, 이 축제를 주관한 사람들과 멀리서, 가까이서 달려와 준 공연자들과 여러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천지 만물 모두에게도.
정금안<영광여성의전화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