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의 시간은 어디쯤 멈춰 있을까
유채꽃과 청보리, 마늘밭 어우러진 한 폭 수채화
2014-04-17 영광21
바닷가 돌담길이 정겹다. 돌담 너머 밭에선 노란 유채꽃이 하늘거린다. 청보리와 마늘밭도 바람에 일렁인다. 산자락은 다랑이 논으로 계단을 이루고 있다. 시간이 멈춰버렸는지 마을도 옛 모습 그대로다.
완도 청산도는 섬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다. 풍광도 한 폭의 수채화다.
청산도 슬로길은 도청항 쉼터에서 도락리로 연결된다. 가뭄 때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동구정(東口井)도 만난다. 해변엔 곰솔이 줄지어 있다. 오래 전 섬사람들이 조성한 방풍림이다.
곰솔 숲 앞 바다에 돌무더기가 부채처럼 펼쳐져 있다. 바닷고기를 가두기 위해 만들었던 독살이다. 밀물과 함께 밀려온 고기가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하게 가둬 잡는 것이다.
돌담길과 유채밭
뒤로는 청보리를 품은 계단식 논이 자리하고 있다. 청산도 사람들의 피와 땀이 배어있는 땅이다. 길은 계단식 논을 지그재그로 돌아 영화 ‘서편제’ 촬영지였던 당리로 이어진다.
밭 언저리에 초분(草墳)이 보인다. 초가로 만든 임시무덤이다. 오래 전 드라마 촬영 때 쓰였던 것을 없애지 않고 그냥 둔 것이다.
초분장은 시신을 땅에 묻지 않고 짚으로 가묘(假墓)를 만들었다가 2&12316;3년 지나 본매장을 하는 장례풍습이다. 땅바닥에 돌을 깔아 관을 올리고 그 위에 짚을 엮은 이엉으로 초가를 지어준다. 그리고 큰 돌을 매달아 단단히 고정시킨다.
초분
이 초분에는 청산도 사람들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세속에 찌든 육신을 땅에 바로 묻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바다로 고기잡이 나가 장례에 참석하지 못하는 가족에 대한 배려도 담겨있다.
드라마 ‘봄의왈츠’ 세트장으로 가는 길은 황홀하다. 흙길과 돌담이 나란히 이어진다. 돌담 너머는 도락리 바다를 배경으로 한 유채꽃밭이다. 푸른 빛깔은 청보리와 마늘밭이다. 영화 ‘서편제’의 배경이 됐던 그 길이다. 주인공이 진도아리랑 가락에 실어 애절한 한을 토해냈던 곳이다.
돌담길 끄트머리에서 만나는 ‘봄의 왈츠’ 세트장도 멋스럽다. 돌담과 유채꽃과 청보리밭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광을 선사한다. 세트장 안에서 보는 바깥 풍경도 매혹적이다. 동화 속 풍경 같다.
세트장에서 화랑포로 가는 길은 호젓하다. 길섶의 숲이 소나무, 후박나무, 동백나무로 울창하다. 산새 소리도 정겹다. 미지의 세계로 가는 길 같다.
슬로길은 화랑포(花浪浦) 갯돌밭과 초분 체험관을 지나 2코스 ‘사랑길’로 연결된다. 옛날 젊은이들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여기까지 와 연애를 했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 마을사람들은 ‘연애바탕길’이라 부른다.
서편제 시연
길이 연인과 나란히 걸으면 더 좋을 만큼 좁다. 해안벼랑을 따라 휘어져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숲도 호젓하다.
“슬로길은 옛날 섬사람들이 오가던 길입니다. 그 길을 고스란히 살렸죠. 따로 개설하지 않고요. 끊어진 곳만 연결했어요. 그래서 곳곳에 사연도 많고 전설도 많이 배어있죠. 여기 사랑길도 그런 길이고요.”
청산도 문화관광해설사 김미경(51) 씨의 말이다.
사랑길 한쪽에 연애바위도 있다. 실제 연인끼리 사랑을 나눠도 될 만큼 넓다. 연애바위 울타리에 매달린 사랑의 나무엽서도 애틋하다. 저마다 수줍은 고백을 담고 있다. 가족의 건강을 비는 사연도 주렁주렁 걸려 있다.
슬로길 2코스
여행팁
청산도에서는 지난 1일부터 제6회 슬로걷기축제가 시작됐다. 슬로길 명사와 함께 걷기, 서편제 명장면 재연, 어울림 한마당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청산도행 배는 완도항여객선터미널에서 평일 오전 6시30분부터 8회, 주말과 휴일엔 오전 5시50분부터 19회 운항한다. 운임은 일반 7000원. 완도국제해조류박람회 관람권 소지자는 30% 할인해 준다. 문의-청산농협(☎552-9388)
먹을 곳은 슬로길이 지나는 마을마다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토속음식점이 있다. 톳비빔밥, 전복죽 등을 차려낸다. 느린섬여행학교(☎554-6962)에서도 톳밥을 먹을 수 있다. 회와 매운탕은 도청항에 있는 자연식당(☎552-8863), 백반은 섬마을식당(☎552-8672)이 맛있다. 청해반점(☎554-6332)의 하얀색 짬뽕도 별미다.
묵을 곳은 청산중학교 동분교를 개보수해 만든 느린섬여행학교(☎554-6962)가 좋다. 도락리의 스마일펜션(☎010-6207-7988)과 지리의 청산솔바다펜션(☎019-225-5114), 국화리의 해조음민박(☎552-9085)도 깔끔하다.
기타 여행 문의는 청산도슬로시티 사무국(☎554-6969)으로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