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산단은 영광의 미래이고 희망 … 분에 넘치는 사랑에 감사”

■ 특별인터뷰 - 6년 임기 마무리하는 정기호 군수

2014-06-26     영광21

정기호 군수가 30일 이임식을 끝으로 임기를 마무리 짓는다.
2008년 보궐선거로 취임해 2010년 재선에 성공한 정 군수는 “군수로 일한 지난 6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살아온 한 때이다”고 말한다. 그만큼 열심히 뛰었다는 소리다.
대마전기자동차산업단지를 조성했고 법성포단오제의 국가중요문화재 지정, 보리산업특구 지정, 부채 제로시대 개막, 영광예술의전당 건립 등이 정 군수가 그동안 이룬 성과다.
그러나 그는 “정기호가 아닌 공무원들과 우리 영광군민이 만들어낸 결과물들이다”고 강조한다.
지난 23일 정기호 군수를 만나 군정을 이끌었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지난 6년간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소회를 들어봤다.

퇴임이 몇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지난 6년간 군정을 잘 이끌수 있도록 협조해주신 분들과 도와주신 많은 분들을 찾아뵙고 감사인사를 드리고 있다. 또 함께 고생했던 우리 직원들과도 이별을 준비하는 중이다. 많은 분들께서 ‘그동안 지역의 화합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해줘서 고맙고 고생했다’고 덕담을 많이 해주셨다.

지난 6년동안 군정운영에 대해 스스로 평가한다면 어떻습니까
스스로 평가라기보다는 지난 6년 동안 활동에 대해 자랑을 해보자면 가장 먼저 군민의 화합을 모든 군정의 최우선으로 뒀고 화합만이 우리 영광의 발전이 있겠다고 생각해 반대쪽 사람을 중용하는 등 노력했다는 것이다.
군민화합을 기본으로 지역내 다양한 SOC시설을 갖추고 각종 스포츠대회 유치 등 관광스포츠 기반을 구축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켰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851억원의 부채를 전부 갚아 부채제로의 시대를 맞이한 것에 대해서도 살림을 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인사와 건설공사문제에서 구설수에 오르지 않게 객관적이고 깨끗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을 통해 군민이 신뢰할 수 있도록 하고 이것이 곧 지역발전의 에너지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24일 공약사업이었던 영광예술의전당이 개관했습니다.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예술의전당 건립은 우리의 중요한 문화적 가치다. 우리 영광지역의 가장 핸디캡이 문화예술분야였는데 예술의전당 건립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군민들의 목마름도 해소하고 그것이 또 문화예술인들에게 구심점으로 작용해 지역의 문화예술발전의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술의전당이 작은 건물일지는 모르지만 문화예술의 가치뿐만 아니라 우리 군민의 삶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대단히 중요하고 귀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우산공원과 더불어 국제공공디자인 대상을 받을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 앞으로 다양한 프로그램 등 내부적인 조건 등만 갖춰진다면 좋을 것 같다.

대마산단 등을 직접 마무리하고 싶어하셨는데요. 앞으로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와 공무원과 김준성 당선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대마산단은 영광의 미래이며 희망이고 앞으로 더 발전해야 할 재산이다. 올해부터 700억원 규모의 전기차 연구개발사업이 시행되는데 이것이 성공해야 앞으로 2~3년내에 대마산단에 전기차를 연구하는 기업과 공장들이 가득 찰 것이다.
문제는 지금 현재 유치된 기업들이 조만간에 착공하도록 새로운 지도자를 중심으로 군민과 공무원들이 열심히 노력을 해야 한다. 중앙정부와 전라남도와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어 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했으면 좋겠다. 700억원 규모의 사업이 확정됐지만 예산이 반영되지 않을 경우에 이 사업이 10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군민들 모두가 힘을 모아 이 사업이 4년 안에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해서 대마산단이 영광지역 경제에 획기적인 변화를 만드는 구심점이 됐으면 좋겠다.
특히 대마산단은 정기호가 만든 산단이 아니라 영광군민 전체가 만든 산단이다. 정치적인 접근을 떠나서 대마산단은 영광의 미래고 희망이라는 인식으로 일의 연속성을 갖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길 바란다.

임기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입니까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많다.
가장 힘들었을 때는 태풍 볼라벤으로 손해가 클 때 원전의 짝퉁부품사건이 불거졌을 때였다. 또 후쿠시마사고와 함께 지역주민들의 원전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다.

당시 중앙정부에서 총리가 방문하고 각종 언론이 보도를 하는 등 전국적으로 이슈가 돼 군정이 마비될 정도였다. 그런데 모든 군민들이 범군민대책위를 구성해 진상을 규명하고 원전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등 온 군민이 힘을 모아서 극복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보람있었던 일은 영광을 보리와 굴비산업특구로 지정한 것이다. 영광굴비의 명품화사업 진행으로 영광굴비의 질을 향상시켜 상품의 가치를 높였다.

또 2012년 보리수매제도가 폐지됐음에도 역발상으로 전국 최초로 보리산업특구로 만들어 낸 것이 가장 보람있다. 당시 정부에서는 ‘보리는 사양산업이다. 그만 재배하라’고 통보했다.
우리 영광군이 역발상으로 오히려 특구까지 지정을 요청했을 때 정부시책에 반하는 사업을 한다는 이유로 중앙정부와 마찰이 많았다.

그러나 묵묵히 추진해 보리산업특구로 만들어냄으로써 지역의 농업가치와 농업인의 소득증대에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현재 보리식품의 가치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 보리산업이 우리 농업구조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법성포단오제가 국가중요문화재로 선정된 것도 기억에 남는다. 그동안은 도문화재로도 지정받지 못했지만 국가중요문화재 지정을 통해 우리 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는데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십니까
이번 선거과정에서 산부인과 분만시설 지원 사업비를 반납했다는 등 사실이 왜곡돼 알려졌다.
그러나 사실 하루에 한명꼴도 안되는 산모를 위해 상시적으로 의사와 간호사 등을 배치해 예산을 낭비하기보다 광주지역으로의 이송서비스와 산후조리비용 보조 등을 해 주는 것이 산모를 위해 더욱 좋다는 것이 산부인과 의사로서의 판단이었다.
지난 6년 동안 받은 사랑을 보답할 길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산부인과 의사로서 분만실이라도 열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어떨지 고민중이다. 다만 병원내부의 사정 등도 있어서 확정은 하지 못했다.

군민들에게 어떤 군수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군수의 위상을 내려놓고 군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보통군수가 되고자 했다. 관용차도 검정색 세단이 아닌 지프차로 교체했고 공개석상에서 군수자리를 따로 마련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 군청주변의 높은 담을 허물고 각 실과의 출입문을 유리문으로 바꿔서 군민들이 편하게 문을 열고 드나들면서 더욱 소통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 군민들이 군수의 위상을 내려놓고 소통하고자 한 보통의 서민군수로 기억해 줬으면 한다. 의사라고 하니까 재산이 많을 것처럼 생각하는데 실제로 재산도 많이 없다.(웃음)

마지막으로 군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지난 6년 동안 부족한 사람에게 넘치는 사랑을 주시고 군정을 잘 끌어올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드린다.
또 앞으로도 우리 영광이 더욱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새로운 군수 당선자에게 협조를 해 주길 바란다.
저 역시 우리 영광군의 발전과 군민을 위한 일이라면 어디서나 조그마한 일이라도 역할을 하겠다.
이서화·조윤서 기자 lsh1220@yg21.co.kr

 

  • 인터뷰  뒷이야기

“지역발전 위해서라면 작은 역할도…” 
마지막까지 영광지역 발전에 대한 열정

“그동안 정말 고마웠고 감사했습니다. 함께여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정기호 군수는 인터뷰 말미 군민들에 대한 감사인사에 한글자한글자 또박또박 힘을 줬다. 그동안 원활한 군정운영을 위해 협조해 준 군민들과 지지자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섞여 있었다.
그러면서 마지막까지 대마산단과 영광발전을 이야기하며 영광군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이번 선거과정에서 대마산단이 부정의 온상인 것처럼 이야기되는 것이 가장 마음이 아팠다는 그는 “그릇을 많이 씻다보면 깨지는 그릇도 있는 것처럼 물론 몇개 기업이 부도가 날 수도 있고 문제가 불거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마치 대마산단 전체가 문제있는 것처럼 다뤄진다면 어떤 기업이 우리 대마산단에 유치를 하려고 하겠습니까? 대마산단은 우리 영광의 미래이고 희망이예요. 정기호가 만든 산단이 아니고 우리 군민들이 만든 산단입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지난 6년을 돌아보며 “제 인생중 어떤 때보다 가장 열심히 살았던 시간이었다”며 “투자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기업대표를 기다리면서 김밥이나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도 있었지만 지역발전을 위한 일이라 힘들기보다 오히려 즐거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치인으로 사는 12년 동안 살피지 못한 가정도 이제는 돌보고 취미생활도 할 수 있게 돼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정기호 군수는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지도 모르고 일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 가정도 돌보면서 골프도 치고 취미생활을 하고 싶어요. 제일 먼저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고 싶어요. 제가 사교댄스도 좀 추거든요”라며 웃었다.
이서화 기자 lsh122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