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일본의 망언, 이유가 있다
데스크칼럼 - 박찬석 / 본지편집인
2004-12-09 영광21
11월29일 우리의 대법원격인 일본 최고재판소는 일제 침략전쟁에 강제로 끌려간 한국인 징용 징병 위안부 등 한국인 피해자와 유가족 등 35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아시아 태평양 한국인 희생자 보상 청구소송’을 기각했다.
일본 최고재판소가 한국인 피해자와 유가족이 제기한 소송을 기각한 사유는 “전쟁 피해와 전쟁 희생에 대한 보상은 (일본)헌법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단순히 정책적 견지에서 배려 여부를 고려할 수 있는데 지나지 않는 사안”이라는 것이었다.
무려 13년여에 걸쳐 진행된 사안치고는 그 결과가 너무 허무했다. 일제 강점기 관련 한국인 피해자들의 대일소송은 이번 판결로 한가닥 희망마저 무너지고 말았다. 한국인 피해자들은 이제 일본정부를 상대로 피해보상마저 받을 길이 없어진 셈이다. 하기야 가해자가 피해자를 상대로 한 판결이니 애당초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슴이 아렸다.
이보다 앞서 지난 11월27일에는 일본 문부과학상인 나카야마 나리아키(中山成彬)는 일본 역사교과서에서 “종군위안부나 강제연행 같은 표현이 줄어든 것은 정말 잘된 일”이라는 일본식의 고질적인 발언을 해서 파문을 일으켰다.
또 한 모임에서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부상은 “일본의 역사교과서는 매우 자학적이었으며 일본은 나쁜일만 했다는 식이었다”면서 일본의 만행을 기술한 과거 교과서를 직설적으로 비판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를 보면서 후안무치한 그의 발언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적 사실로 이미 검증된 사안마저 부정하는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의 망언은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주변국과 선린을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제멋대로 왜곡된 역사관에 찌든 망언을 서슴지 않았던 일본 정치인들의 행태를 우리는 그동안 너무도 많이 봐왔기에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필자가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것은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국회의원 4분의 1에 해당하는 70명이 정기국회를 채 열흘도 남기지 않은 시점인 11월30일 일본에 체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정기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사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서 한시가 급한 시기에 시답잖은 이유로 일본에 있었던 국회의원들에게 울화통이 터졌다.
이들의 방일사유는 1972년부터 해온 한일의원연맹 총회 참석(37명)과 올해로 6회째인 한일의원 친선축구 참석차(33명)라고 하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한일의원연맹 총회 참석차 방일한 국회의원 중에는 친일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 처리를 맡고 있는 행자위 법안 심사소위 위원들도 포함돼 있어서 법안처리가 연기되기까지 했다.
이번에 일본에 간 의원들은 정당의 구분도 없고, 나이의 구분도 없었으며 남녀의 구분마저 없었다. 물론 이미 일정이 잡힌 것이라서 어쩔 수 없이 가게 됐다고는 하지만 뻔히 정기국회의 회기를 아는 국회의원들이 굳이 정기국회 기간 중에 일정을 잡은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내년은 을사보호조약 100주년, 해방 60년, 한일국교정상화 4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이렇게 역사적 의미가 다분히 배어있는 2005년을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에 대해 국회에서 논의한다는 얘기는 아직껏 듣지 못했다. 이렇게 소갈머리 없는 국회의원들 탓에 일본이 걸핏하면 망언을 하고 국민들이 이렇게 속이 상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