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광지역 이주여성과 자녀들의 서울 탐방기
영광지역에도 약 300세대의 다문화가족이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런데 머나먼 타지에서 찾아와 한국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그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떠나온 고향과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박혀있다.
필리핀이 고향인 한 이주여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고 있지만 한번씩 부모님이 보고 싶어서 운다”고 말하기도 했다.
언제나 마음에 그리움을 담고 사는 이주여성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 한빛원전에서는 지난 2006년부터 매년 홍농, 법성, 낙월, 백수 등 원전주변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문화탐방을 실시하던 것을 올해는 특별히 다문화가정을 초청해 함께 했다.
영광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협조로 이주여성과 자녀들이 함께 서울지역으로 탐방을 다녀온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며 하나가 되다
9월19일 아침 7시30분 영광다문화가족지원센터 앞에는 중국, 일본, 베트남, 필리핀 등 다양한 나라에서 시집을 온 이주여성들과 아이들이 모였다. 한국에 온지 10년이 넘었다는 일본인 엄마의 한국어는 우리와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유창했다. 아이들도 하나같이 밝고 귀여운 모습이었다. 이들의 모습에 ‘다문화가정은 우리와 다르다’는 우리사회의 편견이 부끄럽다. 이때 한 녀석이 말을 걸어왔다.
“선생님~ 우리 어디어디 가요?”
영광을 떠난 버스는 서울 방문에 앞서 천안시에 있는 독립기념관부터 찾았다. 과거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과 비슷한 역사를 지닌 필리핀, 베트남, 중국 출신의 여성들에게도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러다가 순간 ‘아차’ 싶었다. 일행중에 일본출신 여성 2명이 함께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던 것이다. 같은 마음이었을까.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인솔자로 함께한 노춘화 팀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너무 감정적으로 느끼는 것보다 하나의 역사로 보면 될 것 같아요.”
한국의 아픈 역사 속에 일본을 무자비한 가해자로 묘사해 놓은 이곳이 불편하리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예상과는 달랐다.
“조용히 참회하는 마음으로 볼게요.”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에 정말 고맙고 감사한 순간이었다.
서울에서 반짝반짝 빛나던 아이들
“점이 없네~.”
서울에 도착해 63빌딩 왁스뮤지엄을 관람하다가 중국인 엄마가 마오쩌둥의 인형을 보고 한 말이다. 나는 전혀 신경 쓰지 못했던 것으로 설사 유심히 봤다 하더라도 절대 눈치 챌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같은 공간 속에서도 서로 다른 것을 본다. 집단의 문화가 강한 한국에서 다름은 곧 틀림이었다. 다문화가정에서 자란 2세들을 그런 이유로 놀려대기도 했고 항상 이방인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한솥밥 먹는 식구들끼리도 같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많았고 설사 다르지 않다 해도 비슷할 뿐 같지는 않았다.
‘점이 없네’라는 그 사소한 한마디에서 관점의 차이를 발견했고 이를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서울 야경은 필수 코스! 조금 늦은 저녁을 먹고 케이블카에 올랐다. 유난히 장난스런 녀석들이 케이블카 탑승권을 들고 도망가는 바람에 표가 꼬깃꼬깃 해졌다.
“그거 없으면 남산타워 못간다”하며 으름장을 놓아도 장난끼 있는 눈은 여전히 반짝반짝했다.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한 남산타워 전망대. 배는 부르고 야경은 환상적이어서 이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엄마와 아이 할 것 없이 멋진 풍경을 눈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국에 온지 대부분 5년 이상 됐지만 서울이 처음인 사람들이 많았다. 농촌지역으로 들어와 살다보니 도시문화를 경험할 기회가 많지 않고 아이들을 키우며 바쁘게 살다보니 일부러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왠지 이들의 처음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내내 즐거웠다.
처음에 문화탐방을 기획할 때 우리나라의 역사를 잘 보여줄 수 있는 경주를 떠올렸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가 아닌 현재에 살고 있고 가장 빠르게 한국을 이해하는 방법은 한국의 지금을 아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사는 곳,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한국의 지금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이 바로 서울이었다.
1박2일에 서울을 느끼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마지막 일정을 마친 후에 “서울에 살고 싶다”고 말을 하는 아이의 표정에서 아쉬움이 묻어났다. 연예인이 꿈이라는 그 아이의 호기심에 찬 눈빛이 보기 좋았다.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다
여행을 시작한 첫날 출발하는 버스에서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해서 무엇을 줄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버스에서 내릴 때는 내가 받은 것들만 기억이 났다. 마오쩌둥의 점 이야기에서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는 법을 알았고 독립기념관 일본인 엄마들의 모습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방법을 배웠다.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임으로써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고 이해함으로써 서로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다. 국적은 다양했지만 서로의 감정은 보편적이었다. 앞으로 더욱 닮아가고 배워갈 우리가 기대된다.
한빛원자력본부 홍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