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명의 나이에 뒤늦게 이룬 농부의 꿈
28 - 영광읍 서융석씨
이제 콩을 털어내는 것을 끝으로 그의 올 한해 농사도 마무리된다. 3년전 귀농해 벼, 고추, 잎담배, 콩 등을 열심히 기르고 판매했다. 아버지가 경작하던 땅을 그대로 물려받았으니 다른 귀농·귀촌인보다는 적응이 수월한 편이라고 한다.
서융석씨는 “다른 귀농·귀촌인들은 농사지으려면 땅도 사고 집도 사야 되는데 저는 부모님께서 닦아놓은 기반이 있어서 거의 무임승차했죠”라고 머리를 긁적인다.
아버지의 성화에 쫓겨 간 수원
영광읍 출신으로 영광종고 농업과를 졸업한 그는 일찍이 농부의 꿈을 키웠다. 졸업 후에는 새마을청소년회 부회장으로도 활동할 정도로 열정적인 농부가 되고 싶었다.
서씨는 “제가 농사를 짓겠다고 하니 아버지께서 작대기를 들고 ‘시골에서 농사지으면 장가도 못가고 희망도 없다’며 쫓아내셨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수원으로 가서 직장생활을 하게 됐죠”라고 말한다.
수원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가정을 꾸리고 한 집안의 가장이 되고 나서도 농사에 대한 관심과 농사를 짓겠다는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여러차례 귀농을 계획했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2012년 드디어 오랜 꿈을 이뤘다. 그 사이 그의 귀농을 결사반대하던 아버지도 나이가 들어 팔십 노인이 됐고 그도 세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귀농·귀촌인에 대한 관심과 지원 필요해
서씨는 “이제 장가도 가고 아이들도 낳아 길렀으니 아버지가 반대하실 이유가 없잖아요? 더 나이 들기 전에 꿈을 이루고 싶어서 귀농했죠”라고 귀농하기까지 겪은 우여곡절을 들려줬다.
서씨는 “오랜 꿈을 이뤘지만 막상 부딪혀보니 농촌의 어려움과 현실이 마음깊이 와 닿았다”고 말한다.
지난 3년간 아버지가 농사짓던 땅에서 여러 가지 농사를 짓는 동안 귀농인이 귀농해 정착하고 소득을 얻기까지 쉽지 않음을 느낀 것. 또 매달 일정 수익이 보장되던 직장생활과 달리 수확철에만 수익을 얻는 것도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서씨는 “영광군이 귀농·귀촌인들에게 정보를 주고 혜택 등에 대해 통합해 안내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문했다.
또 “대도시에서 귀농을 많이 하기로 소문난 고창군과 강진군의 귀농·귀촌인을 응대하는 직원들의 태도는 열의가 넘치는 반면 영광군은 그렇지 않아 비교가 된다”며 “인구늘리기의 핵심인 귀농·귀촌인에 대한 행정기관의 태도가 달라지고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랜 꿈이었던 귀농에 성공한 서씨는 최근 또 다른 꿈이 생겼다. 진정한 농부로 거듭나 오랫동안 영광에서 농사를 지어온 또래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농부가 되고 싶다고.
“50대면 여기에서는 청년이던데요”라고 밝게 웃는 아직 팔팔한 서융석씨가 멋진 농부로 거듭나길 바란다.
이서화 기자 lsh122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