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려하고 웅장한 사계절 뚜렷한 큰 산
산이야기 - 설악산
2004-12-27 영광21
자연의 아름다움에 도취돼야 할 가슴은 왠지 진눈깨비 바람속에서 고갯길을 넘어 가는 촌로의 초췌한 모습을 보는 듯 착잡하다. 이번 송년산행 구간은 전국령 중에 가장 아름답다는 한계령 정상에서 대청봉으로 올라 내설악과 외설악을 모두 돌아본 뒤 공룡의 등을 타고 운해를 가르며 마등령까지 진행한다.
한계령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뚜렷한 변화속에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던 길을 멈추게 하고 넋을 잃고 바라보며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한계령 휴게소 좌측으로 나있는 108계단을 올라 설악루를 옆으로 하고 우측으로 꺾어 매표소를 지나면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조금 오르다보면 패여 나간 흙에 튀어나온 소나무 뿌리가 무릎까지 치솟아 하루빨리 관리공단에서는 손을 봐야할 것 같다. 여기서 물 한모금 마시고 잠깐 휴식을 취한 후 고속도로 같은 서북릉을 반복하며 가다 건너면 산봉우리 끝은 이미 황금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먼동이 밝아오면서 이슬을 흠뻑 머금은 미억취꽃과 개쑥부쟁이 기름나물꽃의 청초한 모습이 아름답다.
한참을 걷다보니 중간지점인 끝청에 도착한다. 여기서 발 아래는 공룡릉 중청 점봉산 동해바다 가리산 능선 등 설악의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가. 말로만 옮겨가든 이야기가 직접 산행에 동참하며 현실을 겪어온 동행하는 이의 벅찬 감격의 흥분이 가슴속으로 서서히 스며든 것 같다.
또 하나 가보지 않는 사람에겐 설명할 수 없지만 거대한 수묵 담채화를 보는 듯한 한폭의 동양화에 빠져드는 한계령쪽 협곡 물안개가 피어오를 때면 운치를 더해준다. 하나 더 보탠다면 대청봉 정상에서 설악의 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천화대와 범봉 세존봉 화채봉, 뒤돌아본 점봉산에서 한계령을 넘어 백두대간 길이 모두 장엄하고 경이롭다.
고려말 안축은 설악을 평하는 글에 ‘금강주이불웅 지리웅이불수 설악수이웅’이라고 했다. 금강산은 수려하기는 하나 웅장하지 못하고 지리산은 웅장하기는 하나 수려하지 못한데 비해 설악산은 수려한데다가 웅장하기도 하다는 것이다. 대청에 올라와 설악을 보지 못한 모든 산악인 등산객 여러분에게 지금의 이러한 감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다.
70년대말 어느해 겨울 설악의 설경에 반해 한해에 다섯 번을 오른 산사나이도 있다. 그때의 벅찬 감동을 지금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산꾼들이 땀흘리며 산에 오르는 이유는 아름다움을 가슴 가득 안고 산을 내려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한국화가 곽원주 선생님의 글이 생각난다. “막걸리 한잔을 더 마시고 안개구름에 가려진 비선대를 다시 올려다보는 순간 갑자기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진다. 천둥 번개와 함께 아주 굵은 빗방울이 가던 길을 멈춰 서게 많이 쏟아진다. 강물이 갑작스레 불어나면 조난사고라도 날까 걱정이 앞선다. 비를 피해 날아든 몸집 작은 벌 한마리가 막걸리잔 위에 젖은 날개를 접는다. 벌도 취하고 싶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