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 최고! 우리 며느리 최고!

박 이 순 어르신 / 법성면 용성리

2015-04-16     영광21

산길 따라 가파른 언덕을 두번 넘어서면 만나는 법성면 용성리 성촌마을.
복숭아꽃이 이제 막 피기 시작해 은은한 향기가 감도는 이 작은 마을에 소문난 효자와 효부가 있다. 그런 아들과 며느리가 제일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척하고 들어 올리는 박이순(82) 어르신.
같은 동네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해 6남매를 낳아 기른 어르신은 33년전 남편을 떠나보냈다. “많이 아프다가 간 양반이라 자식들 하나 제대로 못 키워보고 간 것이 아쉽제”라고 남편을 떠나보낸 후 힘들었던 시절을 얘기한다.

아무것도 없는 그 시절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먹여 살려야 했던 어르신은 다른 사람들의 밭일, 논일을 도와주고 받은 품삯으로 겨우 먹고 살며 울기도 많이 울었다.
“땅도 없고 논 한마지기로 먹고 살았으니까 배곯는 일이 태반이었지. 자식들 공부하나 제대로 못 가르치고 살았어”라는 어르신은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어린나이부터 일을 시작했던 자식들에게 늘 미안함과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 돈이 없고 살기가 힘들 땐 남편생각이 정말 많이 났는데 자식들이 그 부족함을 채워주니 이제는 남편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어르신.

몇년 전 허리와 무릎수술을 한 이후 거동이 많이 불편해진 어르신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주는 큰아들과 큰며느리 덕분에 어르신은 젊은 시절 고생했던 시간들을 보상받는 기분이다.
“우리 며느리는 얌전하고 어딜 가든 내 생각해서 작은 것이라도 사다주고 나 아프다고 아무것도 못하게 하고 쉬라고만 한당께. 우리 아들도 언제나 나를 그렇게 생각해줘”라며 “동네에서도 효부라고 소문났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어르신은 영광에서 시집온 며느리를 처음 봤을 때부터 ‘내 며느리다’라고 생각했다.
담배농사와 논농사를 짓고 있는 아들내외는 아침 일찍 일터에 나가 밤늦게 돌아오지만 일이 고되고 바쁜 와중에도 늘 어머니가 먼저다. 아들도 어느새 환갑을 넘은 나이가 됐지만 어머니를 위해 더 열심히 일한다.
고생하는 아들과 며느리의 모습에 처음에는 미안한 마음이 많이 있었지만 지금은 좋게 생각하며 산다는 어르신은 “우리 아들은 오래오래 살라고 늘 얘기하는데 사는 데로 살아야지”라고 말한다.
소녀같은 순수한 웃음을 가지고 있는 박이순 어르신은 “그동안의 고생이 이제는 복이 됐다”고 생각한다.
효심 가득한 아들과 며느리 덕분에 박이순 어르신에게는 삶의 힘이자 남부럽지 않은 장수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