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선생님의 그리운 그 시절

정 병 주 어르신(군남면 도장리 )

2015-04-23     영광21

긴 하천을 따라 넓게 펼쳐진 논들 사이로 달리다 보면 만나는 군남면 도장리 장고마을. 마을 위쪽 고즈넉한 옛집의 모습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정병주(90) 어르신댁.
매일 40분씩 걷고 자전거를 타며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정병주 어르신은 45년간 교직생활을 했다. 구례에서 1년간 생활한 것 외에는 모두 영광지역의 초등학교에서 근무한 정 어르신은 늦둥이로 태어나 부모님을 모셔야 했기에 영광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단 한번도 교감이나 교장을 맡겠다는 욕심을 가져본 적 없이 45년간 평교사로 근무했다. 수십년을 아이들과 살을 비비며 교육에 있어서는 엄격하고 무서운 호랑이 선생님이었지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 누구보다도 순수했다.

“나는 젊었을 적부터 사람들과 어울리고 노는 것을 정말 좋아해서 백수초등학교에 근무할 때 거기 청년들과 함께 어울려 놀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해”라고 말하는 정 어르신은 탁구, 당구, 춤 등 못하는 것 없이 다재다능했다.
45세부터 후배교사에게 춤을 배워 일요일이면 늘 광주까지 가서 춤을 추고 스포츠댄스도 배우는 등 배움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그렇게 활동적인 시절을 보낸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담소를 나눌 친구하나 없는 것이 어르신의 가장 큰 아쉬움이다.
한동안은 영광읍내에 자주 나가 사람들을 만나곤 했지만 요즘은 거의 나가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어르신은 옛일을 떠올리며 지나간 세월을 그리워하는 일이 많아졌다.


4년전 먼저 떠나보낸 아내가 그리울 때마다 사진을 꺼내보며 일곱남매도 모자라 시동생까지 챙기며 고생하던 아내를 향한 그리움에 젖는다.
또 군남면장을 지냈던 아버지의 모습, 한없이 다정하고 따뜻했던 어머니의 모습, 교직생활을 하며 만났던 동료교사들, 제자들의 모습을 차근차근 떠올린다.
아쉬움이 남을 법한 그 시절들에 후회는 없다는 정병주 어르신. 1주일에 2번씩 오는 도우미 외에는 만날 사람이 없어 고독하고 외롭지만 자주 찾아오는 아들과 딸들 덕분에 어르신의 고독의 무게는 조금 덜어진다.
“운명은 어쩔 수 없는거야. 친구가 있으면 더 오래 살 것 같지만 지금 이대로라도 건강하게만 살다 갔으면 좋겠어.”
은혜정 기자 ehj5033@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