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듯 살아가는 노년의 행복
이 형 례 어르신 / 불갑면 건무리
“나도 주름 하나 없이 포동포동 예쁘던 시절이 있었다네.”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연지곤지 찍고 함평에서 불갑으로 꽃가마 타고 시집왔던 그 때가 아득하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여든의 나이를 넘은 이형례(84) 어르신은 그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이제와서 그때 얘기하면 뭐하겠어. 지나간 세월은 지나간 것이고 지금 잘 사는 것이 중요하지”라며 소탈하게 웃는 이 어르신은 시집온 이후로 온갖 고생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아들셋에 딸하나. 귀하디 귀한 자식들을 낳아 기르며 지게를 지고 산으로 나무를 하러 다니고 보리 가마니를 지고 다니며 일했다. 젊었을 적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일을 할 수 없었던 남편을 대신해야 했기 때문이다.
“풍족하게는 못살았어도 논농사도 짓고 밭농사도 지으면서 자식들 키웠지. 힘들어도 내자식들 먹이는 일인데 재미있었지”라고 말하는 이 어르신은 56세 되던 해 남편을 먼저 떠나보냈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홀로 4남매를 거뜬히 키워내고 모두 제자리를 잡아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젊었을 때 그렇게 고생했어도 이제 나이가 드니 몸은 편하네. 8년전에 무릎수술을 하고 걷는 것도 힘들고 요샌 또 천식이 조금 있어서 숨쉬는 것도 영 안좋아도 맘고생은 없으니까 살만하네”라고 말하는 이 어르신은 “올 봄에 딸 하나를 가슴에 묻었어. 날도 좋은데 뭐가 그리 급했는지 오랫동안 아프다가 먼저 가버렸어”라며 먼저 떠난 작은딸의 얘기를 조심스레 꺼낸다.
딸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지만 이 어르신은 행여나 먼저 간 딸과 남아있는 아들,딸들이 걱정할까 싶어 씩씩함을 잃지 않는다.
요즘 이 어르신은 백수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딸을 만나러 가는 일이 유일한 낙이다.
딸을 만나기 위해 불갑에서 백수까지 버스를 2번이나 갈아타고 가야하는 먼 여정이지만 가는 길조차 행복하다.
“힘든 줄 모르고 매번 갈때마다 여행하는 기분이 들고 좋아. 가서 일은 못도와줘도 얼굴이라도 한번 더 보고 옆에서 도란도란 얘기라도 하고 오는 것이 재밌고 좋아서 가는거지”라고 얘기한다.
평소에는 마을 경로당에 나가 시간을 보내는 이 어르신은 마을사람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살아가는 재미가 있다.
“지금보다 더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가 남편과 딸을 만나러 가고싶어”라는 이 어르신은 하루하루 작은 일에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간다.
은혜정 기자 ehj5033@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