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모양처의 길을 배경으로 진솔한 글 표현
영광의 문화예술인 71 - 수필 이 정 옥
2005-01-14 박은정
“효동마을에서 김밥하나를 들고 달려와 내 입안에 넣어주던 어린 소년의 고사리 손이 감격의 눈물을 자아내게 했다”며 “어쩌면 이 나이 새로운 인연속에서 젊음을 찾아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문화원에서 실시하는 학생들의 문화탐사를 도우며 느꼈던 감정을 표시한 이정옥(55)씨.
이 씨는 “별 볼일 없는 제게 이런 기회를 준다니 사실 부끄럽기도 하지만 해 놓은게 없으니 두렵습니다”라며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그는 자녀를 모두 성장시켜 놓고 문학을 공부하며 글을 쓰기 시작한 만학도이다.
그의 나이 오십 중반. 사람들은 일생 중 그 시기가 가장 편한 시기라 한다. 그는 이에 대해 “나이보다는 애들에게 자잘한 신경과 손쓸 때를 넘겼기에 그만큼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며 “자식은 끝없는 부모의 관심속에 존재하지만 공부한다고 타향에 떨어져 있으니 조석으로 챙겨야 하는 부담이 덜하기에 하는 말이다”고 그가 얻은 여가의 배경을 밝혔다.
“젊음을 끄집어 살아온 날들의 이모저모를 스크랩 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고자 글쓰기를 찾았다”는 이 씨는 영광이 고향이고 농사를 짓는 부모 아래 6남매의 장녀로 태어났다. 그때 그 시절을 겪은 이들 대부분이 배우고 싶은 의지와 욕망은 가득해도 환경의 어려움 등으로 나래를 맘껏 펴지 못했다.
이 씨도 다방면으로 학구열과 도전을 보였지만 이루지 못하는 좌절을 겪었다. 어린 시절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다는 그. 아마도 그때부터 그에겐 글쓰는 재주가 잠재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 끼와 소질을 꼭꼭 감추고 결혼을 했으며 자녀를 위하고 남편을 내조하는 철저한 전업주부로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던 중 그는 우연한 계기로 조선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문화산책과를 수료하며 문학을 접하게 됐고 그를 계기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후 그는 여성백일장에 입상을 했으며 지난 2003년에는 수필문학에 등단을 하게 됐다.
이 씨는 “나의 후손에게 만이라도 이렇게 살아 왔노라 라고 일기 같은 짧은 글 토막 하나를 전한다며 보람을 엮어낼수 있지 않을까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며 “그러다 보니 많은 분들을 만나 배울수 있는 기쁨과 그를 통한 인연이 인생에 소중한 재산이 되고 있다”고 나름대로 값지게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전했다.
이런 그가 더욱 주위에 시선을 받는 것은 2남1녀의 자녀가 모두 바르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의사인 그의 큰딸은 결혼해 딸을 두고 있으며 둘째아들 또한 의대를 졸업했다. 막내아들은 법대를 나와 사법고시를 준비중에 있다. 이처럼 그는 어머니와 아내의 길을 잘 지켜왔으며 그를 통해 느낀 감정들을 진솔하게 글로 표현해 마음에 와 닿는 작품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살기가 편한지 좋은 글감이 잘 안 떠오른다”고 겸연쩍은 웃음을 보이는 이 씨는 경험하는 작은 일상을 아름다운 글로 승화시키기 위한 작업을 계속 이어갈 의지를 조용히 밝히고 있다.
길
햇빛 찬란한 아침은
항시
열려있는 공간
수시로 싸우는 변덕에
시간은
뛰어서 해 저물텐데
가야할 소망이여
구불진 고삿길에
내 곧은 잣대를 언제나 펼칠꼬
고 집
“형님! 냉장고가 두 개여서 좋으네요?” 상놓는걸 거들러 들어온 올케가 김치를 꺼내다가 말한다 “그래 하나보다는 편리하지.” 우리집에는 200리터 용량의 냉장고가 두 개가 있다. 얼음을 사다가 쓰던 아이스박스속의 김치가 냉장고안의 김치로 바뀐지는 지금부터 20년전이다
월세방에서 전세방으로 전세방에서 흙집 처마가 있는 조그마한 내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큰맘먹고 사들였다. 짜게모은 저축금과 부족한만큼 대출해서 장만한 오두막이지만 내집이라는 편안함과 편리함에 익숙해지고 개구쟁이 아이들이 책가방을 무겁게 져야 할 때쯤 손아래 시누이가 큰 냉장고를 사들이면서 내놓은 것을 같다 놓았다.
그래서 두 개가 있는 것이다. 쪼개쓰느라 커다란 수박하나 넣어 놓고 먹지 못했지만 과일도 조금은 시원하게 먹을수 있었다. “ 형님! 전기요금 많이 나오지 않나요?” “으응, 옛날에는 많이 나왔지만 모타를 교체하구선 그렇지도 않는 것 같애” 그동안 두 세번의 수리를 받았더니 아직까지 이상없이 가동이 잘되고 불편한 줄을 모른다.
숫가락를 놓던 올케가 열려진 부엌문을 통해 바로 문앞의 세탁기를 건너다본다 “저걸 쓸수 있어요?” 라고 묻듯이... 몇 년전 뒷집에서 이사가면서 뚜껑이 깨져서 버린 반자동 세탁기를 옮겨다 놓고 처음 써보는거라 조심스럽게 돌려 봤었다. 손빨래 하기가 힘든 청바지, 이불같은 빨래를 할 때는 얼마나 편한지…. 세탁기 없이 산다고 몸도 좋지 않으면서 그렇게 살지 말라며 “이 멍청한 여자야” 하고 핀잔을 주던 선배언니 생각이 났었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