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지만 행복이 가득한 노후

박 소 례 어르신 / 대마면 원흥리

2015-09-10     영광21

오랜시간 살다보니 어느새 나이는 아흔이 넘었고 예전의 기억마저 가물가물 하지만 수줍은 웃음만은 여전히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는 박소례(94) 어르신.
“스무살에 시집왔는데 나는 초혼이었고 우리 영감은 재혼이었어. 억울할 것도 없었어. 한번 발 디딘 곳이라 평생 살았지”라며 덤덤하게 얘기를 꺼내는 박 어르신.
30여년전 세상을 떠난 남편에 대한 기억은 어느새 희미해졌지만 더듬더듬 남편과의 추억을 떠올려 본다.
“술을 참 좋아하는 양반이었는데 술을 그렇게 많이 먹었어도 가기전까지 참 건강하게 잘 살다 갔어. 그때는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지”라며 웃는다.
박 어르신은 어린시절 눈을 다쳐 평생을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며 살았지만 그 누구보다 꿋꿋하게 살아왔다.
“농사도 안짓고 장사도 안해봤어. 다른 사람들 일 도와주면서 벌어서 먹고 살았어. 자식들 공부 가르치는건 꿈도 못꿨는데 다 자기들이 벌어서 대학도 나오고 했어”라며 기특한 자식들 자랑에 또 한번 미소가 번진다.
젊은 시절 바쁘게 살았던 만큼은 못하지만 요즘은 작은 텃밭에 팥과 호박, 옥수수를 심어 키우는 재미로 살아간다.
“경로당이 집에서 좀 멀기도 하고 가는 길이 오르막길이라 가끔 놀러가. 가서 동네사람들도 보고 얘기도 하고 그러고 살아”라고 얘기하는 박 어르신은 “무엇보다 우리동네 이장이 나를 잘 챙겨줘서 항상 고맙게 생각해”라고 말한다.
“시장에 갈때면 가끔씩 나를 데리고 가서 필요한 것도 사고 병원도 같이 가주고. 이장이 딸기농사를 짓는데 딸기 배달갈 때는 나 심심할까봐 같이 데리고 다닐 때도 있어”라며 “그 고마움은 말로 표현이 안되지”라고 얘기한다.

요즘은 아침마다 드라마를 보는 재미로 산다는 박 어르신의 방에 걸려있는 2벌의 새하얀 모시옷. 어르신의 부지런함과 꼼꼼함이 보인다.
“옛날에는 백년초를 빻아 즙을 내서 모시옷에 풀을 먹였는데 요샌 그냥 밥을 끓여서 해. 다른건 못해도 모시옷에 풀먹이는 건 안잊어버리고 해.”
불과 5년전까지는 곱게 빗은 머리에 은비녀를 꽂고 다녔다는 박 어르신은 “젊어서부터 머리를 길어서 묶어서 비녀도 꽂았는데 동네에서 나만 그러고 다니면 이상하잖아. 그래서 잘라버렸어”라며 웃는다.
불편한 몸이지만 부지런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박소례 어르신은 “나는 이제 그냥 저냥 살다 가는 것이지. 우리 자식들이 더 잘먹고 잘살고 우리 이장님이 더 건강하고 그랬으면 좋겠어”라고 말한다.
은혜정 기자 ehj5033@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