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어도 그 시절이 제일 좋았다네”

강 안 순 어르신 묘량면 영양리

2015-11-06     영광21

한떨기 꽃처럼 아름답기만 하던 시절은 어느새 저만큼 지나고 이제는 백발의 노인이 됐지만 지금껏 살아온 시간들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강안순(92) 어르신.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 아들 여섯에 딸 다섯, 11남매나 되는 자식들을 낳아 기르느라 정신없는 세월을 보냈지만 그때가 제일 좋았다고 말하는 강 어르신.
“우리 때는 시집 안 간 처녀들은 일본군이 다 잡아간다고 해서 낮에는 바깥출입도 못하고 살았던 시절이야. 나도 그맘때 쯤 남편을 만나서 결혼했어”라고 얘기한다.
“젊어서 먹고 살길은 농사짓는 것 밖에 없었고 11명이나 되는 애들에 시부모님, 남편 뒷바라지까지 하고 살았는데 그때 힘든 것은 말도 못해”라고 말하는 강 어르신은 “그렇게 고생하고 살았는데 늙어서는 다리가 아파서 자유롭게 못 돌아다니는게 조금 속상하긴 해”라고 말한다.
젊은 시절 손재주가 남달랐던 강 어르신은 베를 짜는 길쌈과 바느질로 마을 이웃들과 품앗이를 하며 가족들의 생계를 이어가기도 했다.

“옛날에는 내가 우리 애들 옷도 다 만들어서 입히고 이발도 내가 직접 해줬어”라며 “낮에는 베짜고 밤에는 바느질하고 했어. 내가 바느질을 해주면 마을사람들은 돈을 받는 대신에 우리 농사일을 도와주고 인심이 참 좋았지. 지금도 눈만 보이면 바느질은 거뜬히 할 수 있어”라며 웃는다.
강 어르신 못지않게 고생을 많이 했던 남편은 28년전 암으로 먼저 떠났지만 남편을 그리워할 새도 없이 자식들 뒷바라지에 평생을 바쳤다.
“고생했어도 키워놓고 보니 참 뿌듯해. 그 어린 자식들이 커서 시집, 장가간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손주 녀석들도 다 커서 결혼해 증손주도 봤어. 오래사니 증손주들 재롱도 보고 좋아”라고 얘기한다.
강 어르신은 아픈 허리와 다리 때문에 거동이 불편해 하루 대부분을 집안에서 보내고 있다.
“나이가 구십이 넘으니 이제는 집안에서도 지팡이 없으면 걷기도 힘들고 앉았다 일어나는 게 힘들어서 바닥에는 앉지를 못해. 요즘은 1주일에 3번씩 도우미가 와서 집안일도 해주고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줘서 살만해”라고 말한다.
11명의 자식들 중 큰아들과 큰며느리가 한마을에 살고 있어 더욱 든든하다는 강 어르신은 자식들도 함께 늙어가는 나이에 자주 보지 못해도 건강하게만 살면 최고라고 얘기한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처럼 긴 세월을 묵묵히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온 강 어르신은 남은 여생이 행복하게 물 흐르듯 여유로운 삶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은혜정 기자 ehj5033@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