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의 꿈을 이루기 위한 전제조건

데스크칼럼 - 박찬석 / 본지편집인

2005-01-28     영광21
연두기자회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선진 한국’을 건설하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거론하였다. 모처럼 한나라당도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대하여 외견상으로는 적극적으로 화답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만 본다면 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열에 오르는 것은 이미 따 놓은 당상으로 여겨지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내용을 들여다보면 도처에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돈을 만드는 방법에 있어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접근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열린우리당은 재정정책을 강조하는 반면 한나라당은 감세정책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으로 가는 에너지를 축적하는 방법에서 두 정치집단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 같은 두 집단의 정책은 선진국을 가늠하는 척도가 국가경제의 총량을 따지는 것이 아니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다 잘 사는 사회를 뜻한다는 범주에서 보면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재정정책이란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 정부가 적극적인 개입을 하는 것이고, 감세정책이란 부유한 자들의 세금을 줄이는 대신에 가난한 사람들의 출혈을 강화하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두 정책을 단순 비교하자면 열린우리당 쪽이 한나라당보다는 올바른 정책을 제시했다고 본다. 재정정책은 미력하나마 복지사회에 눈길을 주고 있지만 감세정책은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사실상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강자가 모든 것을 소유하는 지극히 원시적인 사회형태를 이룰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노무현 정부가 ‘선진 한국’의 조건으로 제시한 ‘소득 2만불 사회’의 문제점이다. 예를 들어 열 사람이 사는 집단이 있다고 하자. 이 집단의 소득 총액이 20만불이라면 개인당 평균 소득은 분명 2만불이 된다. 그런데 한 사람이 10만불을 가져가고, 또 다른 한 사람이 5만불을 차지한 뒤 여덟 사람이 남은 5만불로 나눠가진다면 소득 2만불 사회라는 말은 단지 허울에 불과하다.

과거 정권과 같이 총량지표를 가지고 국민들을 설득하는 방식으로는 사회를 조금도 개혁할 수 없다. 박정희 정권 때는 ‘소득 1천불 사회’라는 총량지표를 내걸고 유신독재를 자행했다. 예정보다 일찍 목표를 달성한 내면에는 가혹한 노동자의 착취와 극심한 자연의 착취가 있었던 것이다.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소득 2만불’을 운운하는데도 국민들이 전혀 반가운 내색을 하지 않은 까닭은 어두운 과거의 경험이 있어서였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하나의 유기적 통일체이다. 다만 사람들이 편의를 위해 관념적으로 구분해놓은 것이다. 최근 과거 외교문서들이 속속 공개되고 있다. 얼마전 공개된 한일협정에 관련된 외교문서에는 고통받은 국민 개개인의 피해는 애써 외면한 박정희 정권의 부끄러운 과거가 드러났다.

수없이 많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단지 경제발전에 공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상황이 이럴진대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은 박정희의 망령에 시달리고 있다. 친일과 독재와 불의로 얼룩진 대한민국의 역사를 제대로 남겨 교훈으로 삼자는 과거사 규명 노력은 야당 대표가 그의 딸이다 보니 모두 정치적 의도로 몰아붙인다. 이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릴 때 대한민국은 진정한 선진국의 반열에 당당하게 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