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처럼 보이는 지석묘
영광의 마을이야기 - 묘량면 운암마을
2005-01-28 영광21
운암마을은 마을 뒷자락에 선사시대의 지석묘가 현존하고 있는데 이 지석묘를 마을 입구에서 바라보면 ‘구름에 휩싸인 바위처럼 보인다’고 해 마을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문헌상 기록에 의하면 운암마을은 1789년 호구총수에는 기록이 없고, 1912년 지방행정구역 명칭일람에는 묘량면 운암리로 기록돼 있다.
그리고 1917년 조선면리동일람에는 운암리, 영당리, 박주리, 부성리, 영촌 일부를 묘량면 운당리로 개편했으며, 1987년 행정구역일람에는 법정리로 운당리, 행정리로 운당1리, 자연마을 운암마을로 기록돼 있다. 운당1리에 속하는 영당과 운암마을은 거의 공동생활권 지역이다. 영당을 지나 운암마을에 들어서면 멀리 오봉산 아래로 함안이씨 문중제각인 영모제와 운암저수지가 보인다.
영당에서 운암으로 연결되는 옛길인 ‘똘길’ 부근에 줄을 감은 수살이 서있고, 넓은 공터에 마을회관이 있다. 또 골목길을 따라 뒤로 올라가면 큰 당산나무 아래 모정이 앉아 있으며 모정앞으로 운암바위라 불리우는 지석묘가 있고, 그 아래로 멀리 영당포강이 자리잡고 있다.
마을 바로 옆에는 영당마을이 자리잡고 있으며 멀리 서쪽으로는 장동·당산마을, 북쪽으로는 운당2리인 선동·매화·박주마을이 보인다. 이 마을 뒤로는 청동기시대의 지석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기록상 처음 이곳에 입향해 정착한 성씨는 함안이씨 양간공파 이영한(1706년 ~ ?)이다.
영한은 무과에 급제해 통정대부로 함평현감을 지내고 나주진관병마절제도위를 겸한 인물로 때마침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굶어죽게 되자 사재로 빈민들을 규율했다. 이에 현민들이 송덕비를 세워 덕을 칭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