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계보를 잇는 서예가 그리고 훌륭한 스승

영광의 문화예술인 74 -한학자 이 학 용

2005-02-04     박은정
“민족전통 정신 효도 예절을 지켜나가는 후예가 되자”

“‘덕필유린(德必有隣) 도불추지(道不墜地)’ 덕에는 반드시 이웃이 있고 도리는 절대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이는 영광지역 서당교육의 산실 덕림정사(德林精舍)의 지수 이학용(90) 선생이 “눈도 잘 안보이고 이젠 글씨도 하나씩 잊어버려 붓을 잡고 쓰는 것이 예전처럼 쉽지 않다”고 말하며 거의 1년만에 그를 찾은 본사를 위해 써준 글이다. 이글은 덕림정사 입구 입덕문에 씌여진 글이기도 하다.

홍농의 조산(祖山)이라 불리는 덕림산 기슭에 자리한 덕림정사에 머무르고 있는 이학용 선생은 구한말 한학자인 전주이씨 성와 이승달의 종손이다. 그의 할아버지인 성와 이승달도 이곳에 은거해 도학을 가르치고 경전을 연구했다. 이처럼 덕림정사는 영광 인근지역에서 유일하게 한학의 전통을 4대째 이어가는 서예의 대가로 그 가문의 명문을 이어오고 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서해바다 위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풍암마을 덕림산. 그곳에서 마주한 지수 선생은 90세의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영광을 대표하는 한학자로 그리고 지역 서예계의 큰 어른으로서 선비의 기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집안의 대를 이어 덕림정사를 지키고 홍농읍에서 서예학원을 운영하며 한문을 함께 지도하고 있는 그의 막내아들 이경회씨는 “아버지는 실제 효행과 전통가족윤리를 몸소 실천해 온 분이다”며 “40여년 전 할아버지(선생의 부친)가 돌아가시고 덕림산 선영에 모신 후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과 해질 무렵이면 인사 올리셨다”고 전하며 할아버지 묘소 앞에 꼭 발 크기만큼 움푹 패여 풀이 자라지 않았던 아버지의 발자국을 기억했다. 가족들은 그 발자국을 ‘효 발자국’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지수 선생은 “서예를 처음 배울 때 글을 잘 짓고 글씨를 잘 쓰는 방법을 선생님께 물었더니 ‘다독다작다서(多讀多作多書)하라’고 일러주셨다”며 “글을 많이 읽고, 많이 짓고, 많이 쓰는 것이 글씨를 가장 잘 쓰는 방법이다”고 알려줬다.

지수 선생은 법성상고 한문강사, 영광향교 장의 및 전교, 홍농서호동지회장, 홍농 노인만수회장 등을 역임했다. 선생은 60년대 이후부터 핵가족화로 전통적 윤리, 도덕적 민족문화가 허물어져 감을 염려해 충효와 경로사상을 진흥시키고 전통적 미풍양속을 진작시키기 위해 유도사상과 도덕을 회복에 앞장서 헌신해 왔다.

그는 “이곳 덕림정사는 저의 조부이신 이승달 선생께서 처음 초당을 짓고 수백명의 학생을 배출한 곳이다”며 “부친이신 이택근 선생을 비롯해 지금 저까지 3대에 걸쳐 지켜오고 있다보니 집이 많이 낡아 보수해야 할 형편이 됐다”고 말하며 정사가 보수돼 전통 예절교육과 인성교육의 장으로 꾸준히 활용되길 바랬다.

덕림정사는 ‘종가 생활문화 체험관광’프로그램으로 전통 서당교육과 가족 가훈쓰기를 구상하는 한편 인근마을에 가족단위의 홈스테이를 지정, 서도(書道)를 배우도록 할 예정이다.

이학용 선생은 전국 전석문(全石文)의 대가로 영광에 살고 있는 유일한 한학자이다. 고창 선운사의 비석 2기와 영광내산서원의 현판 등 그가 새긴 비문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또 그는 일제 때 덕림정사 서당을 지키며 상투조차 자르지 않았고 6·25동란 때는 산속으로 숨어 든 피난민들에게 온정을 베풀며 선비의 절개를 버리지 않았다.

또 가난한 아이들에게는 학비조차 받지 않고 후학을 가르쳐 왔다. 지금도 한학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나 한문교육을 희망하는 학생들의 발길이 덕림정사에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세상이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현대사회가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우리민족전통의 정신과 인성 그리고 효도, 예절 같은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며 삭막해져 가는 현실속에서도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한 이학용 선생. 그는 영광 서단(書團)의 원로이며 영광 서단의 정통 계보를 잇고 있는 서예가이고 훌륭한 한학자였다.

“덕림정사와 긴 역사를 함께 해온 앞뜰의 금송을 처분해서라도 낡은 덕림정사를 복원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간절한 소원에 모두 귀를 기울여 한학의 맥을 잘 이을 수 있도록 힘을 모아가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