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만 행복하게 살고 싶어”
신 금 안 어르신(법성면 월산리)
“10리길을 걸어서 시집온 지가 벌써 60년이 넘었네. 참 고된 세월 잘 보내고 지금까지 잘 살았어.”
자연의 아름다움이 가득담긴 법성면 월산리 산하치마을. 산 아래 위치한 작은 마을에서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서만 평생을 살아온 신금안(82) 어르신이 있다.
영광읍 양평리가 고향인 신 어르신은 20살에 4살 연상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아들 셋에 딸 둘, 5남매를 낳아 기르며 행복한 시절을 보내던 신 어르신은 38살 젊은 나이에 남편을 먼저 떠나보냈다.
“우리 영감이 다리가 아파서 오랫동안 고생하면서 병원을 광주로도 가고 영광으로도 가고 여기저기 많이 다녔는데 나중에는 결국 절단을 했어. 그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인지 심장병으로 돌아가셨어”라고 말한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떠나보내고 홀로 5남매를 키워야 했던 신 어르신은 살아생전 잘해주던 남편과의 좋은 추억을 안고 고된 세월을 버텨왔다.
“나는 시집살이가 독해도 너무 독했어. 친정에서는 딸은 나 하나인데 무슨 일을 얼마나 배워서 시집왔겠어. 일 못한다고 구박받고 많이 울었지”라며 “참 그때는 도망갈 생각도 못해보고 살았어”라고 얘기한다.
호된 시집살이에도 따뜻한 마음으로 위로해주는 남편이 있어 견딜수 있었다는 신 어르신.
“우리 영감이 의족을 한 다리로 영광읍까지 나갔다오면 항상 나 먹으라고 뭐든 하나씩 사다가 챙겨주는거야. 내가 우리 영감하나 믿고 살아서 그 고생을 다했어도 어디 갈 생각 한번 안했지”라고 말한다.
그런 남편을 먼저 보낸 후 주변에서 재혼하라는 얘기가 많이 오고갔지만 신 어르신은 오로지 자식들을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만 했을 뿐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논 3마지기로 농사를 짓고 다른 사람 집에 일을 다니며 조금씩 모은 돈으로 5남매를 키워낸 신 어르신. 많이 가르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가지고 있지만 잘 커준 5남매가 기특하고 고맙기만 하다.
“그때는 자식들만 키워놓으면 어떻게든 살겠다 싶었거든. 우리 애들은 일찌감치 출가해서 지금은 다들 잘 살고 있어”라고 말한다.
신 어르신은 매일 경로당에 나가 요가도 배우고 종이접기 등 토탈공예도 배우며 즐겁게 살고 있다.
“알록달록한 점토로 꽃도 만들고 그걸로 시계도 만들고 액자도 만들고 참 재미있어. 어려워도 매일매일 하고 싶다니까”라며 웃는 신 어르신.
“우리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참 살기 좋아. 나는 우리 자식들이나 건강하게 잘사는 것 말곤 바라는 것이 없어”라고 얘기한다.
은혜정 기자 ehj5033@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