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군 북쪽으로 진출하는 교통요충지
영광의 마을이야기 31 - 대마 장보마을
2005-02-18 영광21
마을 뒤 북쪽으로 23호선 국도 원흥교의 남산천(전남)과 고령교의 춘산천(전북) 등 2개가 합해지는 곳이 와탄천인데 그것을 막아놓은 것이 원보이다. 마을이 형성되기 전 광활한 들과 습지가 펼쳐지고 있어 신평(新坪)으로 불리다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원님이 지나가다가 멀고 멀어서 원보(遠保)라고 했다는 설과 장보(長保)에 대한 유래는 일제 초기 마을 북서쪽에 긴 보를 막으면서 장보, 또 장보 모퉁이는 돌아가니까 장보통(長保通)이라고 불렸다고 하는데 그것은 목포 무안 함평 사람들이 영광을 거쳐 이 보(保)를 지나 고창이나 서울로 가는 중요한 통로로써 원보에다 돌맹이를 놓고 건너다니는 통로라 해 불렸다는 설이 있다.
마을에 사람이 맨 처음 들어와 살았던 시기는 1800년대 말이나 1900년대 초에 고창군 대산면 갈마리에서 살던 진주정씨 정포국이 생활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영광~고창간 행로인 이 마을에 주막을 차려 성업을 이뤘고 이와 비슷한 시기에 고창군 대산면 갈마리에 살던 함평이씨 이계택이 이 마을에 와서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호남에서 최초로 양조장 면허를 취득했다는 대마홍조양조장과 그 위로 조금 지나면 맞은편에 기념물 제22호인 정열각과 그 옆에 장보 뒷산이라고 부르는 십자일산이 있는데 예전에는 헬기가 착륙할 수 있게 해 놓았었는데 서해안고속도로를 낼 때 밀어버렸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