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했던 세월도 이제는 추억이야”
김이례 어르신 군남면 동월리
“우리 영감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동안 고생만 했으니 가고 싶은 곳 다가보고 편히 살라고 그랬어. 그래서 영감 말대로 편안하게 살고 있다네.”
지독하게도 가난하기만 하던 그 시절 열일곱 어린 나이에 시집와 8남매를 낳아 기르며 시부모님도 모셨던 김이례(81) 어르신.
13살 무렵 냇가에서 목욕을 하고 피부병을 얻어 평생을 병마와 싸웠던 남편을 대신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김 어르신은 무거운 어깨만큼 세월의 무게도 만만치 않았다.
“나 처음에 시집와서는 작은 오두막집에서 살았었어. 시부모님과 남편, 우리 애들까지 10명이 넘는 식구가 북적거리면서 살았어”라고 말한다.
마을과 조금 떨어진 산 밑에 오두막을 짓고 살았던 김 어르신은 먼 길을 걸어가야 나오는 마을 우물에서 물도 길어다 먹어야 할 만큼 고생의 연속이었다.
고생하는 엄마를 보고 자란 8남매는 어려서부터 집안일을 도우며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의 버팀목이 돼줬다.
김 어르신은 “진짜로 그 시절 얘기는 하루저녁을 얘기해도 다 못할거야”라며 “우리 8남매가 얼마나 싹싹하게 잘했는지. 애들 덕분에 살았어”라고 얘기한다.
젊음 하나로 밤낮없이 일하며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갔던 김 어르신은 고생을 많이 했어도 이만큼 살아온 것이 스스로 대견하다고 말한다.
“먹고 살기가 힘드니까 빚도 많이 지고 살았어. 뼈 빠지게 농사지어서 빚 갚고 나면 정월에는 한푼도 안남았던 시절도 있었다니까”라는 김 어르신.
먹을 것이 없어 씻나락을 쪄먹고 메밀로 죽을 끓여 먹으며 살았던 김 어르신은 “방 한칸에서 온 식구들이 다 자야하니 자리가 없어서 밖에서 자다가 모기도 많이 물렸지”라고 추억을 되새긴다.
많은 고생을 했지만 정성스레 시부모님을 모셨던 김 어르신은 효부상을 받을 만큼 마을에서 소문난 효부였다.
“우리 시어머니 덕분에 내가 그런 상도 다 받아봤지”라며 “우리 시어머니도, 남편도 참 정이 많은 분들이었어”라고 말한다.
지금 같았으면 단 하루도 못살았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김 어르신은 가족을 위해 살아온 그 세월이 소중하다.
김 어르신은 “난 우리 영감이랑은 싸움 한번도 안하고 살았어. 서로 이해하고 살다보니 그렇게 살게 되더라고”라며 “우리 8남매가 다 엄마 덕분에 살았다며 지금도 참 잘해”라고 얘기한다.
예순이 넘은 큰딸도 여전히 ‘엄마’라고 부른다며 웃는 김 어르신은 “자식들만 건강하면 바랄 것도 없어”라고 말한다.
은혜정 기자 ehj5033@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