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고 때론 쓰라림 주는 ‘불꽃’사랑합니다”
영광을 일구는 여성 - 이정옥 용접공
2005-03-03 박은정
이 씨는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에서 용접을 배워 생활하던 남편은 아버지를 일찍 잃고 혼자된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와 결혼을 했고 그때부터 학정리에서 공업사를 하게 됐다”며 “오랜 세월 남편의 일을 돕다보니 자연스럽게 어깨 너머로 용접을 배우게 됐다”고 밝혔다.
결혼해서부터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는 올해 85세 된 이 씨의 시어머니는 “우리 며느리는 일을 잘못 배웠어”라며 “불을 다루는 일이라 불꽃이 튀어 옷 하나 성한 것 없이 다 구멍이 나고 자칫 잘못하면 불에 데고 일이 아주 험하잖여”라고 말하며 아들 일을 도으며 애쓰는 며느리에 대한 안쓰러움을 표시했다.
남편이 시작한 용접인생을 이젠 함께 걷고 있는 이 씨. 그는 “남편이 출장용접이라도 나갔을 때 공업사를 찾아오는 손님을 되돌려 보내지 않아도 되고 남편을 따라 일을 나가더라도 간단한 작업은 도울 수 있어 편리하다”며 “아직 작은 틈새를 메우는 등 세밀한 용접은 남편을 따를 수가 없지만 간단한 용접은 남편 없이도 할 수 있다”고 용접을 직접 하게 되면서 얻게된 장점을 전했다.
영광읍 녹사리에서 2남4녀의 큰딸로 태어난 그는 어릴때부터 무척 부지런했다고 한다. 이런 그는 남편의 일을 도와 용접을 척척 해내는 것은 물론이고 논농사 1,200여평과 밭농사 400여평을 혼자서 지으며 공업사와 논밭을 오가며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금속과 금속을 가열 용해하고 접합시켜서 일체(一體)로 만드는 작업 용접. 이와 같은 일의 특성상 그의 시어머니가 말한 것처럼 옷하나 성한 것이 없다는 그지만 그는 때론 뜨겁고 때론 쓰라림을 주는 ‘불꽃’과 함께 나누는 인생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아줌마 어디 가셨답니까”경운기 수리를 위해 찾아온 손님이 정 씨를 찾는 목소리다. 그를 찾는 손님의 목소리에 배어있는 정겨움이 한눈에 단골임을 짐작하게 했다. 이처럼 기술자인 남편보다는 이 씨를 찾는 고객들의 발걸음이 그의 용접 실력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오랜 세월동안 지역주민을 만나온 작은 공업사. 그곳에서 당당한 용접공의 모습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이 씨. 그는 오늘도 남편, 1남2녀의 자녀 그리고 홀시어머니를 정성껏 챙기며 뜨겁고 환한 불꽃으로 세상을 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