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좋은 세상에서 재미나게 살아야지”

2016-09-30     영광21

“이렇게 좋은 세상이 왔으니 100살까지 건강하게 사는 게 소원이야. 100살까지 먹을랑께 노인연금 좀 올려주라고 신문에 써줘~”라며 우스갯소리를 건네는 안래규(88) 어르신.
새하얀 셔츠와 파란 자켓, 주황색 선글라스와 하얀 중절모까지 군남면 포천리에서 만난 안래규 어르신은 늘 깔끔하고 멋진 옷차림에 마을에서 ‘멋쟁이’로 통한다.
안 어르신은 “자켓에 있는 유공자배지는 올해 박 대통령이 해준 거야. 오래 살다 보니까 국회의원도 군수도 다 아는 사이니 내가 바로 영광 유명인사 아니겠어?”라며 웃는다.
지금은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즐겁게 지내지만 젊은 시절 그 누구보다도 힘겹고 굴곡 많은 삶을 살았다는 안 어르신은 옛날 살아온 이야기를 해달라는 주변 어르신들의 말에 “옛날얘기를 할라믄 밑도 끝도 없어”라고 대답하더니 이내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기 시작한다.

군남면 포천리에서 5대독자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염산면 두우리에 사는 친척의 손에서 자란 안 어르신은 군복무를 마친 뒤 군남면으로 돌아와 삼일정미소에 취직해 성실히 일했다.
2년간 함께 하며 안 어르신의 성실함을 본 정미소 주인은 안 어르신에게 자신의 딸을 소개시켜줬고 11살 연하의 아리따운 정미소집 딸과 결혼후 처가 식구들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한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큰 행복이 찾아오면 불행도 따른다 했던가. 마을에 갑자기 번지기 시작한 전염병에 처가 식구들이 연이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안 어르신은 아내와 단 둘이 남게 됐다. 고생 끝에 이제야 행복을 맛보려던 순간이었다.
안 어르신은 “마을에 병이 돌아서 아내랑 둘만 남았어. 아마도 그게 같이 살 연분이었나봐”라고 얘기한다.
졸지에 일가친척을 병으로 다 잃은 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아들 셋, 딸 둘과 함께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성실하게 일했다.
안 어르신의 성실한 모습에 지역 유지들은 믿고 일을 맡겼다고.
안래규 어르신은 “포천 부자로 유명한 김씨 집에서 8년, 영광에서 부자로 이름 날리던 탁씨 집에서 17년간 일했어. 남의 논일도 하고 쌀가마니같이 무거운 걸 대신 나르는 가대기도 하면서 열심히 일했어”라며 힘들게 일해 온 당시를 추억한다.
“그래도 이렇게 고생해서 자식들 학교도 다 보내고 이제는 나이 들어서 자식들 덕보고 살아”라는 안 어르신은 “이 좋은 세상에서 즐겁게 살아야지. 안그래?”라며 환하게 웃는다.
유현주 기자 yg21u@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