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던 부지런한 농사꾼
유재회 어르신홍농읍 상하리
새삼 겨울임을 실감나게 하는 찬바람이 불던 12월의 어느 날.
마을 어르신들의 사랑방인 홍농읍 상하리 만수경로당에서 경로당 최고 연장자인 유재회(92) 어르신을 만났다.
홍농읍 신석리 상석마을이 고향인 유 어르신은 “예전엔 마을에 강릉유씨들이 많이 모여 살았는데 지금은 다 도시로 떠나고 얼마 안 남았어”라고 얘기한다.
고향마을에서 나고 자란 유 어르신은 5남매중 장남으로 16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집안의 가장이 됐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으로서 짊어진 삶의 무게를 느끼며 보낸 유년 시절.
어린 소년이 감당하기에 가장의 무게는 무거웠지만 유 어르신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불평불만 없이 열심히 일했다.
“그 당시엔 다들 농사지어서 먹고 살았어. 나도 벼농사를 70마지기나 짓다 보니까 머슴도 부려가면서 쉴 틈 없이 부지런히 일했지.”
일본의 강제징용을 피해 19살의 나이에 4살 연하의 법성 처녀를 만나 백년가약을 맺은 유 어르신.
나이든 어머니와 아내, 아들 넷, 딸 셋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더욱 열심히 일했다.
지금처럼 좋은 농기계도 없이 모든 것을 손으로 해야 했기에 오랜 세월 고된 농사일로 크고 듬직했던 농사꾼의 두 손은 거칠게 변해버렸다.
“아휴 그 당시는 일일이 다 손으로만 해야 하니까 그야말로 고생이제. 70마지기는 소 1마리로 어림도 없었어. 밤낮으로 열심히 일했제”라고 얘기하는 유 어르신.
몇날며칠 꼬박 밤을 새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된 지난 세월이지만 잘 자란 자식들을 보면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하다.
유 어르신은 “고생해서 농사지어서 먹고 살고 애들 학교도 보내고 그러고 살았지. 옛날에는 공부도 잘 못하고 그래서 애들이라도 잘 가르치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노력했어”라고 얘기한다.
함께 동고동락하던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자식들도 모두 타지로 떠나버린 고향에서 홀로 남아 경로당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여생을 즐기고 있다는 유 어르신.
매일 경로당에 나와 심심할 틈이 없다는 유 어르신은 “나이 들어서 농사는 진즉에 그만뒀어. 매일 복지회관에서 맛있는 점심도 먹고 경로당에서 즐겁게 놀며 지내고 있어”라고 말한다.
유현주 기자 yg21u@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