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당골 칭찬 릴레이-이영근
“마파도 할매들 사는 것이 무척 딱하당께”
2005-04-19 박은정
5명이 아닌 15명의 할머니가 모두 남편을 잃고 홀로 지내고 있다. 이곳을 꾸준히 방문하는 수호천사가 있으니 그가 바로 백수 대전리에 사는 이영근(63)씨.
영화에선 30년만에 찾아온 남자 둘을 할머니들이 애걸복걸한다. 그런데 실제 이곳 할머니들은 이 씨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그리워하고 있다.
3년전 우연히 친목계원의 소개로 동백마을의 할머니들을 알게 된 이 씨. 그는 남자 없이 혼자 지내는 할머니들을 안타깝게 여겨 그때부터 이 마을을 방문하며 그들의 남편 또는 아들이 돼 주고 있다.
이 씨는 “동백마을엔 치매 걸린 할아버지와 출입을 전혀 못하는 할아버지 이렇게 두 남자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여성이다”며 “주민 대부분이 70대 80대로 연로한데다 남자가 없어 해결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은 것을 보고 하나 둘 돕기 시작 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그들의 딱한 사정을 밝혔다.
“바다에 금덩어리가 둥둥 떠다녀도 건지지 못한당게”라고 말하는 마을의 할머니들. 그들은 “농사지을 땅이라곤 깔끄막에 있는 밭뙈기뿐, 그나마 다들 나이 들어 일을 못헌게 묵정밭이 돼 불고 돈 나올 데라고는 없는 옹삭시런 마을인디 이 씨가 날마당 댕겨간게 참 좋체”라며 입을 모아 이 씨에 대한 감사함을 전했다. 동백마을 할머니들은 생활보호대상지원금이나 자식들이 보내준 용돈으로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
동백마을에는 원래 할아버지 당산나무와 할머니 당산나무가 있었다. 해마다 당산제를 모시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던 당산나무다. 그처럼 소중히 아끼던 당산나무가 어느 날 명당자리에 묫자리를 쓰려던 타동네 사람의 괘씸한 소행으로 베어지고 만 것. 그 날 이후 할아버지들이 시름시름 앓아 눕더니 한 분 두 분 저 세상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이 씨는 “이 마을 형세가 여성의 몸을 닮아 ‘음기가 센 마을’인 탓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30여 년 전 할아버지 당산나무가 베어진 것에서 이유를 찾기도 한다”며 “할아버지들은 다들 떠났지만 동백마을 할머니들은 5년 전 할아버지 당산나무를 다시 심고 힘이 아무리 부쳐도 해마다 당산제를 꼬박꼬박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마파도 촬영장소’라는 펼침막이 봄바람에 펄럭이는 바닷가 동백마을. 그리고 그들의 버팀목 이 씨.
“자식들 모두 키우고 먹고 살만허고 죽으면 싸갈 것도 아닌디 나누고 살아야제”라며 들로 향하는 이 씨와 “동백마을을 다녀오면 모두들 친정에 다녀 오냐고들 해요”라며 그의 뒤를 따르는 아내의 모습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