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 5월, 가정은 안전한가?
2005-04-27 영광21
지난 15일 그날도 예의 폭력을 휘두른 뒤 잠들은 아버지를 넥타이로 목졸라 죽였다는 죄명으로 만14세의 나이에 긴급구속된 A양에게 그동안 세상은 살만한 것이었을까?
4살 때 아버지에 의해 세탁기에 넣고 돌려졌고 걸핏하면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폭력을 당해왔고, 학원까지 찾아서 머리고, 몸이고 할 것없이 발길질하는 아버지였다.
A양의 일기장에는 이런 아버지에 대한 불쌍하다는 연민이 빼곡이 채우고, 한편으론 고기잡이배를 타고 나간 아버지의 부재상황이 오래 지속되기를 소망하기도 했다. 그러한 소녀의 법적 구속을 놓고 전국적으로 구명운동이 한창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A양 같은 사건이 처음이거나 희귀한 사건이 아니다. 가정폭력 피해여성들은 60평생을 맞고 살았어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마지막 남은 힘으로 남편을, 아버지를 죽였다는 이유로 살인죄인이 되어 차가운 철창에 갇히게 된다. 평생피해자가 정당방위조차 인정되지 못한 채 살인가해자가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우리사회는 가정폭력에 대한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잣대가 다르다. 예를 들어보자.
힘센 아버지가 술만 마시면 부인과 어린 딸을 그 무시무시한 주먹으로 구타한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술 마시고 부인이나 딸을 두드려 패던 중 가슴을 잘못 때려 사망한다.
그러면 우리 법은 '살인의 고의'를 인정하지 않는다. 대개 '폭행치사' 나 '상해치사'로 판결한다.
반대로 늘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던 부인이나 딸이 그날도 '이대로 가다가는 죽을 것 같아' 부엌에 있는 칼을 집어 들고 힘껏 찌른다. 그러면 '살인범'이 된다.
힘이 있어 상대방을 폭행할 능력이 있는 강자가 약자를 죽이면 상대적으로 가벼운 형량인 '폭행치사'나 '상해치사'가 되지만, 약자가 강자를 죽이면 ‘폭행할 능력이 없는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가장 형벌이 무거운 '살인죄'를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약자를 위한 길이 있다. 바로 '정당방위'이다. 우리 형법은 자기나 타인을 보호하기 위해 행한 방어행위는 '정당방위'로 보아 처벌하지 않는다. 특히 '불안, 공포, 흥분, 당황해서 행한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다'라고 법에 분명히 규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법조계는 그동안 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한 판결시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 3월에서야 서울고법에서 가정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를 죽게 한 사건에 대해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인정한 선례가 있고 외국에서는 가정폭력 피해자의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인정하고 있다.
A양의 경우도 정당방위를 인정해야 한다. 더 큰 이유는 폭력을 방조한 어른들과 우리사회에 있다. 이 참에 가정폭력방지법에 있는 신고의무를 강화해야 한다.
가정폭력방지법은 의사, 교사 등을 '신고의무자'로 규정하고 있으면서도 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처벌조항이 없다. 미국 등 외국은 의사나 교사가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 사실을 알게 된 후 경찰에 신고하지 않으면 과태료 처분 및 자격정지 등의 무거운 제재조치를 취하고 있다.
5월은 가정의 날이다. A양도 따뜻한 5월을 맞이할 수 있도록 우리모두 도왔으면 좋겠다.
정금안<영광여성의전화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