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를 더 본다면 소원이 없겠어”

박순애 어르신 대마면 화평리

2017-08-17     영광21

입추가 지나고 말복 역시 지났지만 아직도 한낮의 뙤약볕은 뜨겁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도 환한 미소로 반갑게 맞아주는 박순애(86) 어르신.
친절한 어르신들과 아름다운 경관, 깔끔한 건물이 인상적인 대마면 화평리 수촌경로당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담소를 나누던 박순애 어르신은 느긋하게 한낮의 여유를 즐기는 중이다.
염산면 두우리에서 살던 박 어르신은 꽃다운 나이 열아홉에 8살 연상의 남편을 만나 이곳으로 오게 됐다.
박 어르신은 “차가 없었던 그 시절 걸어서 하루정도 걸리는 곳으로 시집을 왔는데 처음 결혼할 때 정말 만감이 교차했었어”라고 말한다.
결혼하고 슬하에 아들 둘에 딸 다섯을 낳았다는 어르신은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힘겹게 살았다.
시집와서 시부모는 물론 시동생까지 한 지붕 아래 함께 살았다는 박 어르신은 소를 키워서 송아지를 팔아 자금을 마련하고 벼농사로 자급자족하며 먹고는 살았지만 흰쌀밥은 엄두도 내보지 못했다.
남편과 함께 담배농사와 누에를 치며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공부를 시켰지만 그렇게 힘들게 살았어도 “못 해준 게 많아 미안할 따름이야”라고 말하는 박 어르신.
“그 시절에는 다들 힘들게 살고 했겠지만 공부도 잘하는 우리 애들을 고등학교까지밖에 못 보낸 게 아직도 한이야”라며 “무엇보다도 제대로 못 먹였던 게 제일 미안하지”라고 말한다.
또 “그렇게 해준 것 없이 힘들게, 어렵게 키웠는데 전혀 내색도 않고 잘 자라줬어”라며 “애들이 다 커서 손주까지 봤는데 지금도 남편이랑 나한테 참 잘해”라고 흐뭇해하는 박 어르신.
박 어르신의 자녀들은 미국에 있는 셋째딸을 제외하고는 전부 서울에 있어 명절 때면 어르신 부부가 서울로 올라간다.
“먼 길이지만 항상 아들들이 데리러오니까 힘든 것은 전혀 없어”라고 말하는 박 어르신은 서울로 올라가면 주로 큰아들 집에서 지내다 온다.
명절이 아니더라도 박 어르신의 자녀들은 제사 때든 평상시에든 자주 영광으로 와 부모가 잘 계시는지 살핀다.
비록 옛 시절에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때의 고생을 보답 받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박 어르신의 소원은 “손주를 더 보는 것”이다.
“여러 손주들을 봤지만 그래도 더 많았으면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어”라고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