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5월의 절망뒤에 핀 희망
2005-05-19 영광21
1961년 5월16일 자행된 5·16과 1980년 5월17일 저지른 5·17은 20여년이란 세월의 간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닮은꼴이다. 5·16은 이제 막 움이 트기 시작한 한국의 민주주의를 송두리째 짓밟았고, 5·17은 어렵게 찾아온 '서울의 봄'을 꽁꽁 얼어붙게 하였다. 또 일부 정치군인들이 자신들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선량한 국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희생시켰다는 점에서 완벽한 닮은꼴이다.
서슬퍼런 군사정권에 의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던 압제의 시절이 먼 옛날의 얘기가 아니건만 사람들은 어느새 그 시절을 점차 잊어가고 있다. 수많은 원혼들의 피맺힌 한으로 잉태되어 탄생한 민주화 덕에 지금 이만큼의 자유나마 누리고 산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미어진다.
지난 11일 한국사회조사연구소(소장 김순흥)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연구소는 지난해 9월부터 3개월 동안 전국 초ㆍ중ㆍ고생 13,867명을 대상으로 집단면접을 통해 실시한 '2004년도 5·18 인식조사 결과'를 분석하여 발표하였다.
이에 따르면 광주ㆍ전남지역 응답자 1,726명 가운데 5.8%인 100명만이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성격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수치는 그 자체로도 충격이지만 전국 학생 응답자의 평균치인 6.2%보다 오히려 낮은 것이어서 충격의 정도가 예사롭지 않다. 광주ㆍ전남지역의 학생 100명 가운데 6명만이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성격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으며 그나마도 타지역 학생들에 비해 인지도가 낮다고 하니 참으로 비통한 심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미래에 희망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4·19세대가 5·18세대를 예견하지 못했지만 이 땅의 젊은이들은 자신이 사는 시대에 걸맞는 정의에 입각하여 눈앞에 펼쳐진 일을 거뜬하게 돌파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보면 학생들이 한국사회의 역사적 사건에 무표정한 반응을 보인다고 걱정만 할 일은 아니다.
지난 세대들이 사회정의만을 추구하였다고 한다면 새로운 세대들은 그에 덧붙여 공정성과 다원성을 갖추고 있다고 하겠다. 지난 월드컵 때 스포츠 상업주의에 빠져들어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고 수만 명씩 모여서 응원을 벌이던 그 광장에서 미군의 장갑차에 희생당한 두 여중생의 죽음을 애도하고 탄핵을 반대하는 모습에서 새로운 세대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단 믿음이 생기자 '걱정스런 젊은이'(?)야말로 지난 세대에 비해 한 차원 높아진 신세대의 모습이자 우리 사회의 미래라는 확신이 생기면서 비통함도 함께 사그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