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라준 자식들 얼굴만 봐도 행복해”
황의순 어르신<군남면 백양리>
“이맘때쯤이었지. 햇볕 쨍쨍 찌던 날 꼬맹이들 데리고 맛있는 거 싸들고 소풍 나갔는데…. 어렵게 살아서 주먹밥 몇 조각 밖에 못 싸갔지만 한 입씩 나눠먹으며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행복해했던 그때가 그립네.”
마을 경로당 앞에서 돗자리를 피고 앉아 따사로운 봄기운을 만끽하고 있는 황의순(88) 어르신의 말이다.
군남면 금덕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황의순 어르신은 18살에 7살 연상의 남편을 중매로 만나 백양2리로 시집을 왔다.
시집와서 벼농사와 고추, 깨, 콩 등 밭농사를 지으며 살림을 꾸렸던 어르신은 아들 넷에 딸 하나를 낳아 밤낮없이 일하며 바쁘게 살았다.
황의순 어르신은 “우리 젊어서는 다들 어렵게 살았어. 나는 그나마 다른 사람보다는 평탄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지금에 비하면 일만 죽어라하고 살았던 거지”라고 말한다.
힘든 시대였지만 자식들 키우는 재미가 쏠쏠했던 지난 나날들. 황 어르신은 그 시절을 행복했던 기억으로 회상한다. 요즘은 그 때와 달리 손주들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로 산다고.
황 어르신은 “내가 손주들만 9명이나 있어. 모두 잘 컸지. 조그마했던 녀석들이 어느덧 커서 지금은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공무원이 됐지”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황 어르신의 딸들은 남원에, 아들들은 대전에서 직장생활로 바쁘지만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일에는 게을리 하지 않는 효자, 효녀들이다.
명절에는 매번 자식들이 어르신의 안부를 묻고자 한걸음에 달려왔지만 요즘엔 바빠서 잘 내려오지 못해 어르신이 아들네가 있는 대전으로 가게 됐다.
황 어르신은 요즘 매일 경로당에 나와 마을 어르신들과 이야기도 하고 낮잠도 자며 편안한 노후를 즐기고 있다.
마을 어르신들은 “저 양반은 나이가 90이 다 됐어도 뭐든 너무너무 잘 잡수시고 건강히 잘사셔”라며 “60년 가까이 같이 얼굴 보고 살아왔는디 이렇게 좋은 양반이 없어. 모든 일에 충실히 사는 분이여”라고 입을 모은다.
세월의 무게를 묵묵히 견뎌온 황 어르신은 이젠 자녀들과 손주들만 건강하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고.
황 어르신은 “지금은 일을 안 해도 되고 자식들도 다 잘 돼서 걱정거리 없이 세상 편해”라며 “잘 자라준 자식들 얼굴만 봐도 나는 행복해. 앞으로 우리 자식들, 손주들도 건강히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한다.
변은진 기자 ej536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