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내 고생시켜 미안하고 함께해줘 고맙네”
오세춘 어르신<대마면 남산리>
마당을 낮게 날며 재잘재잘 지저귀는 종달새 소리가 평화롭다. 모정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던 오세춘(75) 어르신이 반갑게 맞이해준다.
세월이 흘러 꽤 왜소해진 체격임에도 불구하고 패기가 묻어난다.
1959년 16살이 되는 해 농촌이 살기가 팍팍해 돈벌이를 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 오세춘 어르신은 객지생활을 한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적지 않은 사업체를 운영하게 됐다.
17살때부터 15명 이상의 직원들을 데리고 철공소를 운영하며 이른 나이에 사장이 됐다.
오세춘 어르신은 “내가 젊었을 때는 결단력 있고 용기 있는 사람이었지. 어릴 때 패기가 넘쳤어”라며 껄껄 웃는다.
오 어르신은 평소 아내를 눈여겨보던 어머니와 누나의 소개로 26살에 3살 어린 아내를 만났다.
아내를 처음 마주한 그 순간 첫눈에 반해 고민도 안하고 결혼했다는 오 어르신은 “우리 아내가 젊었을 때 얼마나 이뻤는지 몰라. 고운 얼굴 나한테 시집와서 상해버려서 내가 미안할 때가 많아”라고 말한다.
결혼 후 사업이 잘 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오 어르신에게 어느 날 시련이 찾아왔다.
풀무질을 하고 쇠를 달구며 열심히 모은 돈 6,000만원을 사기당하며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그 당시 6,000만원은 지금 돈으로 하면 6억도 넘는 가치였지만 오 어르신은 “그래도 전 재산을 잃었던 것은 아니기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어렵지만 허허호호 웃으며 이겨냈다”고 말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더 큰 아픔이 찾아왔다.
모처럼 쉬는 날 동생과 목포에 놀러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대형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 자리에서 동생을 먼저 떠나보내야만 했다.
동생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와야겠다고 마음먹은 오 어르신은 34살에 고향인 대마면으로 돌아와 정미소 사업을 하며 아이들을 키웠다.
아내와 함께 자식들을 키우며 치열하게 살던 시절이 재밌고 행복했다는 오 어르신은 “사업 잘해서 돈 버는 재미와 우리 자식들 쑥쑥 자라는 모습 보는 재미가 있었던 그 때가 내겐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어”라고 말한다.
또 “아내에게는 말 못하게 고맙고 또 고마워. 서울에서 살 때도 우리 아내가 직원들 밥도 다해주고 고생을 엄청나게 했어. 나를 믿고 시집왔는데 고생시켜 미안하고 함께해줘 고맙네”라며 눈시울을 붉힌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3년전 무릎수술을 하기도 했지만 항상 옆을 지키며 보살펴주는 아내가 있어 든든하다.
오 어르신은 “나는 이제 더 바랄 것도 없어. 우리 자식들만 잘 풀려서 행복한 인생을 살았으면 해”라고 얘기한다.
변은진 기자 ej536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