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에 나는…

2005-07-14     영광21
아들만 둘을 키우다 10년 만에 본 늦둥이 딸아이 돌잔치를 엊그제 수줍게 치뤘다. 새삼 자식에 대한 애틋함과 사랑스러움에 행복하다면 남들이 주책이라고 웃을까?

20대 때 아들들을 키울 때는 미처 몰랐던 자식에 대한 애잔함이 때로는 힘이 들기도 하지만 보고 있노라면 어찌 그리 사랑스럽고 세상에 없는 여식인지 귀밑머리 희끗한 나이에 창피함도 잊고 입이 귀에 걸려 웃는걸 아내도 낄낄거리면서 한마디 하길 잊지 않는다.

"애가 말을 배우게 되면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놀릴 거야. 몸도 마음도 젊게 살자"고 말이다. 가끔 아내는 늦둥이란 말 자체를 부정하기도 하고, 아직도 미혼인 남녀들도 많고 만혼이 비일비재한 요즘 추세에 비춰 봐도 결코 늦은 나이는 아니라고 우겨보기도 한다.

우리속담에 첫사랑 3년은 개도 산다고 한다. 열살 줄은 멋모르고 살고, 스무 줄은 아기자기하게 살고 서른 줄은 눈 코 뜰 새 없이 살고, 마흔 줄은 서로 못 버려서 살고, 쉰 줄은 서로가 가여워서 살고, 예순 줄은 서로 고마워서 살고, 일흔 줄은 등 긁어주는 맛에 산다고.

자식 기르느라 정신없이 원수처럼 지내다가 사십에 들어선 어느 날 머리칼이 희끗해진 걸 보니 불현듯 가여워지고 서로 굽은 등을 내보일 때쯤이면 철없고 무심했던 지난날을 용케 견디어준 서로가 눈물나게 고마워질 것이다.

40대는 나이를 말하고 싶지 않은 나이,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확인하고 싶지 않은 나이, 체념도 포기도 안 되는 나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난 나이 40에 새롭게 삶의 지표가 생긴 것처럼 흥분되고 책임감과 더 열심히 잘 살아야겠다는 부지런함을 생기게 해준 울 딸이 너무나 고맙고 예뻐서 세월을 낚으며 살고 있다. 마누라와 좀 더 입씨름하면서 살 팔자인가 보다.

이렇게 딸 사랑타령만 늘여 놓으니 아들놈이 서운하게 생각하지나 않을까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딸아이 키우느라 손이 부족할 때 군소리하지 않고 솔선수범해서 애보기를 마다하지 않는 아들놈들이 있어 아이 키우는 게 어쩜 더 수월하게 생각되어 사랑스러움이 배가 되지 않나 싶다.

그런데 가끔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울 딸이 스무 살이 되면 난 몇 살인가를 계산해 보고 불현듯 덜컥 겁이 나기도 하고 한없이 짠해 진다. 건강과 젊음을 잃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고 한없이 미안한 마음에 더 안아주게 된다.

처음의 창피함도 잊은 채 이젠 너무나 당당한 흰머리 아빠여서 행복한 난 이제야 철이 드는 것 같다.
오늘도 난 우리 딸이 좋아하는 과자를 사러간다. 옴질옴질 잘 먹을 딸아이를 생각하면서…
정용안<영광군청년단체협의회 전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