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진정한 해방은 외세를 극복하는 것
2005-08-19 영광21
1936년 10월 A.히틀러와 B.무솔리니가 독일과 이탈리아 양국의 '병행적(竝行的) 이해'에 관계되는 모든 문제에 대하여 공동행동을 취한다는 내용의 협정을 체결한 데서 그 기원은 비롯된다.
이 협정을 가리켜 무솔리니는 "협동과 평화의 의지에 고무된 전유럽의 국가들이 그것을 위해 함께 협동할 수 있는 추축(樞軸)"이라 불렀는데, 그 이후부터 독일과 이탈리아 양국의 제휴관계를 '베를린-로마 추축'이라고 하였다.
1936년 11월 독일과 일본은 양국간에 방공협정(防共協定)을 체결하고, 1937년 11월에는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3국의 방공협정으로 확대됐다가 1940년 9월에는 3국 군사동맹이 체결됨으로써 베를린-로마 추축은 '베를린-로마-도쿄 추축'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런 후부터 추축국이란 용어는 일반화돼 이들 3국의 경우 이외에도 대외정책면에서 긴밀한 공동보조를 취하는 국가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이른바 원조 추축국에 의해서 자행된 제2차 세계대전은 공식적으로는 5,6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나, 실제로는 1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의 세계인구가 20억명 정도였다고 하니 실로 어마어마한 피해자를 낸 전쟁이 아닐 수 없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유럽 및 소련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고, 일본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모든 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미국은 1937년부터 유럽의 전쟁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에 일본은 중국침략전쟁을 일으켰다. 그리고 4년 뒤인 1941년 12월에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공격해서 이른바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엄청난 전쟁을 일으킨 추축국 중에서 가장 먼저 항복한 것은 이탈리아였다. 무솔리니가 1943년 7월에 반군에게 체포되자 이탈리아는 같은 해 9월에 무조건 항복했다. 그리고 무솔리니는 1945년 4월28일에 총살됐다.
다음으로 항복한 것은 독일이었다. 1944년에 연합국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함으로써 사실상 히틀러의 지배는 끝을 보게 됐다. 히틀러가 1945년 4월30일 베를린의 지하벙커에서 자살했고, 1945년 5월에 독일도 무조건 항복을 하기에 이른다.
이탈리아와 독일의 항복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결사항전을 내세우다가 핵폭탄이란 혹독한 대가를 치른 후인 1945년 8월15일 히로히토 일왕이 핵폭탄의 위협으로부터 인류문명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끝낸다는 궁색한 내용의 조칙을 발표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리게 됐다.
너무나 참혹한 전쟁을 일으킨 똑같은 전범인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세계적인 악의 대명사처럼 여기면서, 오히려 더욱 악랄한 히로히토만 다르게 대우하는 것을 보면서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가 소련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세계전략의 소산이라는 사실을 알면 더욱 황당할 수밖에 없다. 해방 60주년을 맞아 무엇이 진정한 해방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