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부끄러워도 우리의 역사, 자랑스러워도 우리의 역사

2005-09-01     영광21
1910년 8월29일은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 경술국치일이다. 이날은 일제가 을사오적 중의 하나인 이완용으로 하여금 고종을 협박해 강제로 합병문서에 조인하게 하여 국권을 피탈한 날이다. 일제의 강압적인 침략에 의해 국권을 잃은 것을 치욕으로 여겨 경술국치일이라고 한다.

2005년 8월29일 경술국치일 95주년을 맞이하여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가 사전에 실릴 예정자 3,090명을 1차로 발표했다. 편찬위가 발족한 것은 2001년이지만 민족문제연구소가 사전편찬 작업을 추진한 것은 1999년이었으니 7년만의 첫 성과라고 하겠다. 이미 해방과 더불어 이루어졌어야 할 일이 이제야 그 기틀을 마련한 셈이다.

3,090명의 명단에 속한 사람들 중에는 우리가 이제껏 애국자로만 알고 지냈던 사람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그중에서도 장지연씨가 포함된 사실은 우리를 아연하게 만들었다.

장지연씨는 1905년 을사늑약(일반적으로 말하는 을사보호조약으로 합의가 아닌 강제에 의해서 체결됐기 때문에 사용하는 용어)이 체결되었을 때,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이란 유명한 논설을 실어서 겨레의 심금을 울렸던 인물이었기에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인물이 친일사전에 오르게 된 것은 오로지 변절 때문이다. 비단 장지연씨만이 아니라 많은 지도층 인사들이 신념을 지키지 못해 변절을 하였고, 친일사전에 오르는 불명예를 얻게 되었다.

지금 우리는 을사늑약 100년, 일제 강제 병탄 95년, 해방과 분단 60년, 한일협정 40년을 맞아 친일청산이라는 민족사의 숙원을 풀기 위한 분수령에 서있다. 이 민족사적인 대과업은 벌써부터 정부와 정치권에서 해야 마땅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선정하고 그 근거를 밝히는 일은 책임문제가 따르기 때문에 민간이 맡기에는 벅찬 구석이 있다. 그런데도 이러한 역할을 민간에 맡긴 것은 역대정부와 정치권의 명백한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물론 자신들의 직무유기에 대해서 핑계를 대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일제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결과 친일파들이 사회 각계의 요소요소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보니 온전히 손을 쓰지 못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현상은 초기에 잘못을 제대로 잡지 못하여 그들에게 그런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잘못된 역사를 부여안고 살 수는 없다. 이제라도 기강을 굳건히 세워야 한다. 국민이 국가를 위하여 힘든 일을 하면 국가는 그들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하고, 국가를 배신하였을 때는 철저히 응징한다는 민족정기를 올바로 세워야 미래의 한국이 있을 것이다.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준엄한 경구는 우리에게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 자랑스러운 역사도 우리의 역사이며 부끄러운 역사도 우리의 역사이다. 비록 늦었지만 이제라도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그 토대 위에 과오를 고백하고 반성한다면, 훗날 후손들은 오늘의 고통스런 결단을 자랑스럽게 기억하고 기록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감히 어느 누구도 역사를 재단하고 한 인간의 일생을 쉽게 규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탈각(脫殼-껍질을 벗음)과 우화(羽化-번데기가 날개 있는 성충으로 변하는 일)에는 거듭나는 고통이 따르기에 이를 인내할 수 있는 굳은 의지와 각오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