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말로 낫놓고 ㄱ자도 몰랐당께”

영광을 일구는 여성/임연순/천주교 영광성당 한글교실

2005-09-15     박은정
“이 책을 보고 알맞은 낱말을 찾아 써넣으세요.” “수녀님 이것 쪼까 알려 주실라요. 눈이 침침해 잘 뵈지도 않고 워쩐데.”

1달여 동안의 방학을 마치고 개학해 다시 수업을 시작한 영광성당에서 운영하고 있는 한글교실이 배우고자 하는 어머니들의 불타는 학구열로 열기가 가득했다. 그리고 그곳 한쪽에서 조용히 공부하고 있는 임연순(68) 할머니를 만났다.

필자가 전하는 명함을 천천히 읽어 가는 모습에 평생을 고개 숙였던 당당함이 다시 살아났음이 느껴졌다.

“나는 참말로 낫놓고 ㄱ자도 몰랐당께”라며 공부한 책이랑 노트를 챙겨오는 임연순 할머니. 그는 교통사고 후 5년간 병원생활을 하던 둘째 아들이 세상을 떠나고 이어 같은 해 화병으로 남편마저 잃은 7년 전부터 성당을 다니고 있다. 한글을 모르던 그는 성당을 다니면서도 성경공부 비롯해 믿음생활에 필요한 공부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성당에서 한글교실을 실시하게 됐고 초기부터 공부를 시작해 지금까지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챙피한 줄도 몰랐는디 글을 배우고 뭐 쪼가 볼 줄안께 요샌 죄끔 부끄럽구먼”이라며 “우리 며느리가 받아쓰기 100점 맞으라고 공책이랑 연필이랑 죄다 사줘 공부 열심히 하고 있당께

이것 보소 오늘도 100점 맞았제”라고 내민 임 할머니 노트속엔 글씨가 또박또박하게 가지런히 잘 정리 돼 있었다. 노트속의 반듯한 글자 하나만으로도 할머니의 꼼꼼하고 정확한 성격을 가늠하게 했다.

영광읍 연성리 성동마을에 살고 있는 임 할머니는 어린 시절 부모를 모두 여의고 언니하고 지내며 학교라고는 가 본적이 없다고 했다. 스무살살 되던해 결혼해 남편과 농사를 짓고 3남2녀의 자식을 기르며 한평생 까막(?)눈으로 살아온 그는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공부를 시작해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고 있는 것이었다.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눈도 아프고 어디 성한 곳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요즘 공부가 유일한 낙이당게”라는 임 할머니는 “이렇게 답답한 우리들을 갈쳐주는 공부방에서 수고하는 수녀님과 다른 선생님들이 제일 고맙제”라며 감사함을 표시했다.

공부는 평생을 해도 끝이 없다고들 한다. 진학 또는 취업을 위해서나 아니면 자기개발과 발전을 위해 많은 이들이 배움에 도전장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처음 배우는 한글을 익히기 위해 노력하는 임 할머니를 포함한 다른 어머니들의 진지한 모습은 배움이 넘치는 그 어떤 이들의 얼굴보다 훨씬 진지하고 아름다웠다.
“나 한글 다 배우고 컴퓨터도 배울랑께 그때 또 오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