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불갑산상사화축제 시·수필 인터넷 공모전 수상작
상사화와 누군가의 노력
■ 은상 수상작
강수연 / 광주시 서구
내가 항상 하는 말이 하나 있다. “열심히 노력해서 앞으로 더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생각 없이 말했던 노력을 난 단 한사람을 보고 노력이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매년 9월엔 영광에서 불갑사상사화축제를 연다. 작년부터 상사화를 보기 위해 엄마, 이모, 나 이렇게 셋이서 영광으로 여행을 갔다. 작년에도 사람이 많았지만 이번 연도는 코로나가 풀려서 그런지 유난히 사람이 많았다. 9월 중순인데 뜨거운 햇빛이 나를 지치게 했다. 상사화고 뭐고 집으로 가고 싶었다.
사실 이날은 친구와 함께 나간 대회 결과가 발표된 날이었다. 결과가 좋았다면 날씨가 아무리 뜨거워도 웃으면서 다니지 않았을까? 결과는 내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달랐다.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대회에서 떨어졌다. 더 마음에 걸린 건 친구 혼자 대회에서 수상했다는 것이다. 차라리 결과를 몰랐으면 좋았을텐데 알고 나니 짜증부터 났다. 내가 열심히 한 노력이 인정받지 않아서, 난 안되고 친구는 돼서, 모든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은 많고 식당 줄은 줄지 않았다. 점심시간이라고 받아주지 않아 1시간을 셋이서 뜨거운 태양 아래를 돌아다녔다. 겨우 찾은 한정식 식당, 줄은 길었지만 받아줄 곳은 여기뿐이라고 생각해 줄을 섰다.
식당 안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작년에 찍은 상사화 사진을 봤다. 상사화의 겉은 화려하다. 하지만 상사화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꽃과 잎이 다른 시기에 피어 만날 수 없는 연인에 빗대어 생긴 꽃말이라고 한다. ‘너도 겉은 멀쩡한데 속은 말이 아니구나’를 괜히 상사화 사진을 보며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찍은 상사화 사진을 보며 이번 연도엔 어떻게 상사화 사진을 남길지 고민하던 중 내 이름이 들렸다. “강수연님!” 급하게 핸드폰을 끄고 사장님을 따라갔다. 그때 난 사장님의 팔 한쪽이 없다는 걸 알아챘다.
사장님의 뒷모습에선 팔 한쪽이 보이지 않았다. ‘아, 팔 한쪽이 불편하신가 보네….’ 라고 생각할 때 사장님은 “오래 기다리셨죠? 이쪽에 앉으세요.”라고 웃음을 띠며 말해주셨다. 그때부터 난 밥보다 사장님의 행동에 집중했던 것 같다.
사장님은 오른팔 팔꿈치까지 있으셨다. 팔이 불편하지만, 사장님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식당을 운영하셨다.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자리를 안내해주시고 물과 숟가락, 젓가락, 접시를 직접 가져다주셨다.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힘든 티를 내지 않으셨다. 난 ‘노력’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단어라고 생각했다. 이날 난 노력이 무엇인지 지금껏 내가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사장님의 오른쪽 팔꿈치에는 굳은살이 가득했다. 그 굳은살이 마치 사장님이 지금까지 겪은 좌절, 좌절 안에서 희망을 얻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온 걸 보여준 것 같았다. 딱딱한 굳은살이 가득한 사장님의 팔꿈치는 “나 노력했으니깐 상 주세요!”라고 말하는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밥인데 밥보다 사장님께 눈이 더 갔다. 사장님의 굳은살에 자꾸만 눈이 갔다. 저 굳은살이 생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쉽게 가늠할 수 없었다. 식당이 워낙 바빠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눠보진 못했지만 분명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다른 사람보다 2배 어쩌면 그것보다 더 큰 노력을 해야 할 때 느끼는 감정은 내가 판단할 수 없었다. 사장님을 보며 영광에 온 이유, 상사화가 떠올랐다.
상사화는 꽃과 잎이 따로 핀다. 그리고 겉은 어떤 꽃보다 화려하고 눈이 간다. 꽃과 잎이 따로 펴 함께 있는 모습은 볼 수 없지만 꽃과 잎 각각의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다. 꽃과 잎이 같이 피면 잎보단 꽃에 눈이 더 간다. 상사화는 꽃에도 눈이 한번, 잎에도 눈이 한번 가게 만든다. 잎이 누군가에겐 그저 풀이라고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잎이 있어야 비로소 상사화가 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잎이 있었기에 우린 화려한 상사화를 볼 수 있다.
상사화의 잎은 팔꿈치에 굳은살이 가득한 사장님의 ‘노력’을 보여주고 상사화는 지금 사장님의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겉은 화려하지만 꽃과 잎이 만날 수 없는 상사화가 마치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지금의 사장님과 끝이 보이지 않는 노력했을 과거 그리고 지금까지 사장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작년에 찍은 상사화의 모습은 밝은색을 가지고 있었다. 상사화 한 송이에 집중하기보단 여러 송이를 함께 찍은 사진이 많았다. 사장님의 모습을 보고 찍은 상사화는 작년에 내가 찍은 상사화의 모습과는 달랐다. 검은 배경에 짙은 색감을 보여주는 상사화 한 송이였다. 내가 찍은 상사화의 모습은 홀로 빛나지만 외로워 보였다. 딱딱한 굳은살이 팔 한쪽을 덮을 때의 외로움을 과연 내가 느낄 수 있을까?
상을 못 받았다고 “나 더 노력해서 다음엔 꼭 상 받을 거야”라고 말하며 내 한계를 뛰어넘는 노력을 하지 않은 나는 노력이 무엇인지 비로소 이번에야 깨달았다. 노력이란 단지 ‘열심히’로 정의되지 않는다. 열심히 안에 겪은 좌절, 포기를 하고 싶어도 포기를 할 수 없는 그 간절한 마음, 삶의 모든 게 들어있는 것이다. 노력이란 무엇인지 보여준 사장님은 열등감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 나를 지금보다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셨다.
사장님의 인생은 내가 보기엔 충분히 빛나는 것 같다. 사장님은 나에게 반환점 같은 역할을 해주셨다. 노력을 운운하며 열심히 하지 않은 나를 객관화 시키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내 모습이 어떻게 변할진 아직 모르겠다. 다만, 진정한 노력이 무엇인지 배운 나는 노력했다는 말을 쉽게 하진 못할 것 같다. 내가 사장님을 보고 노력이란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나도 다른 이가 보기에 노력이 느껴질 만큼의 사람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다.
화려한 겉모습에 그 사람의 노력을 쉽게 판단하기도 한다. 열등감에 파묻혀 그 사람의 노력은 눈에 담으려 하지 않기도 한다. 우린 노력을 항상 쉽게 말한다. “나 노력했는데 점수가 잘 안 나왔어.” “나 노력했는데 이번에 상 못 받았어.” “노력하면 언젠간 실력이 늘 거야.” 노력은 어렵다. 노력한다고 해서 모두 다 이뤄지는 건 아니다. 다만, 그 노력 안에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의지, 나의 한계를 뛰어 넘는 끈기가 있으면 이뤄질 수 있다.
노력이란 무엇인지 화려하지만 외로운 것 같은 상사화를 보며 그 상사화와 닮은 사장님을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
■ 동상 수상작 - 홍진용 / 전라북도 정읍시
상사화
법성포가 슬픈 것은
제 한 몸 바쳐 보시하는 참조기들의
구도求道 때문만은 아니다.
마라난타 선사
이 땅 오시는 길에 동행하여
이적 돌아가지 못하고
모악산 자락에 눌러앉은
인도 여인이었을까?
초가을 산그늘에 여리 솟아
고운 이마는 *빈디로 더 붉고
손발 끝에 가냘프게 핀 헤나는
연둣빛 길게 끄는 *사리로 감싸
하늬바람에 춤을 춘다.
먼바다에서 불어오는
겐지스며
뭄바이에 대한 그리움이여
잊혀진 기억을 소환하는
집착을 멸하고픈 독경 소리여
노오란 이별 노래에 맞춰
환한 봄날을 기다려
꽃과 잎이 함께 피는
불갑사에 가면
불국정토를 만들려던
백제 천년의 언약 지키려
돌담 사이에 몸을 부린 꽃이여
켜켜이 쌓여온 시간 속에서
피고 짐이 엇갈리는 병이 되었나
풍경소리에 붙잡힌 조기처럼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고
뎅그렁 뎅그렁 도솔천을 유영한다.
* 빈디 : 인도 여인들이 화장할 때 이마를 장식하는 붉은 점이나 보석
* 사리 : 인도 여인들의 전통의상인 긴 치마
■ 동상 수상작 - 김무영 / 전라남도 목포시
영광 스케치
상사화 꽃봉우리
잎을 만나지 못하는
하고픈 이야기
눈물을 감추기 위해서야
상사화 줄기가
바람에 소스라치는 것은
역사에 지워진
사실을 들려주기 위해서야
인적人跡이 증발된 법성포
돌아보지 못해서 서러운 불갑산
달빛에 쭈빗거리며
칠산바다 삶에 길들어진
동백나무가 마지 못해
우리를 모른척 하는거야
의용군 고장다운 자존심
불화살은 송이도를 넘고
열부 순절지는 지금도
시누대를 휘지 않는다
파도가 거칠거칠하던 날
넓게 펼친 가마미 해변 주둥이로
조용한 파도 스며들면
무공해 소금염전은 염산 햇빛 먹고
그 뜨거운 여름 햇살을 견디며
하얀 결정으로 짠맛을 품었다
누가 저렇게 깎아놓았는지
전설같은 해안길 따라가면
노을 전시관에 마음을 풀어 놓는다
인도 명승 마라난타 존자가
불교의 성인을 만들었다는 불갑사
이 땅에 처음 불경 소리가 있어
성지로 부족함이 없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는 불갑산
서해 낙조가 참식나무에 머물고
암자는 영육의 아픔을 치유하고
다시 속세로 보내는 어머니 마음
사랑과 용서를 보여준
진정 법성을 이룰 수 있을까
붉은 꽃수술 이야기는
끝내 마무리 되지 않으며
꽃무릇 또한 구걸하지 않고
수변공원 작은 폭포가
우리의 힘든 세상살이를 어루만져 준다
낙월섬 낙조를 마시면
동행하는 사람의 손도 놓아버리는
너무 아름다운 백로가
몽돌과 함께 배경이 되고 있었다
바른 신념이 꼭 아니어도 된다
절대 신앙이 아니면 또 어떻냐
다 이루어가는 우리 미래가
태양도 바람도 우리가 사는
에너지의 바탕이 되기를
오늘도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