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영광상사화예술제 글짓기 입상작 중·고등부

2022-11-11     영광21

대상

2학년1반 1번 주지영

주지영 / 백수중 2학년

나는 영광백수중학교 2학년1반 1번이다. 우리 학교 2학년에는 2번도, 3번도 없다. 2반, 3반도 없다.
그렇다. 우리학교 2학년은 나뿐이다. 1학년 때부터 나 혼자였다. 친구들이 있는 다른 학년이 가끔 부럽긴 하지만 지금의 생활도 나름 익숙해졌다. 
반에 나밖에 없다고 하면, 이 이야기를 처음 듣는 친척들이나 어른들은 묻곤 한다. 그럼 교실에 혼자 앉아서 수업을 듣는 건지, 체육이나 미술, 음악과 같은 수업시간에는 어떻게 하는 건지 의아함 반, 웃음 반 섞인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이에 대해 너무 자주 이야기해서 이제 대본이 생길 정도이다.
그런데 이 글에서 나는 한번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2학년이 나뿐인 나에게, ‘우정’이란 무엇인지 말이다.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았고 나조차도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바로 그것 우정이다. 
초등학생 5학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쯤의 계절이었다. 나는 백수읍의 작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여름의 뜨거운 햇볕 아래, 가을의 바람이 불어오는 날씨였다.
그 날엔, 나보다 한살 어린 4학년 전학생이 온다는 소식에 학교가 시끌벅적였다. 다들 즐거워하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아쉬웠다. 남학생 2명, 여학생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5학년에 전학 오면 좋을 것을. 하지만 나도 전학생이 궁금해서 쉬는 시간마다 복도를 지나다니며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동그란 얼굴, 반달눈을 가진 여자아이였다. 웃음소리도 크고 밝았다. 
전학생은 전학 온지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서 금방 같은 학년 아이들과 웃으며 대화하였다. 활발하고 친절해보였다.
친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학년도 다르고, 수업도 다르고, 같이 이야기해볼 기회가 없었다. 주위에서 서성거리며 뭔가 내가 아는 화젯거리가 나오면 같이 이야기라도 섞어 보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런데 기회만 엿보다가 며칠이나 흘러갔다. 또래 여자아이와 이야기를 나눈 경험이 많지 않아서 어색하고 어려웠던 것 같다.
며칠이 지난 후, 드디어 전학생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아는 언니가 전학생이랑 금방 친해진 듯이 옆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며칠이나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이미 나는 자연스럽게 옆에 껴 있었다.
“지영아, 너도 인사해. 이 아이는 새로 전학 온 4학년 정다은이래.”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는 처음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네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때 “언니,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라며 먼저 웃으며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뭔가 언니답게, 멋있게 먼저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응.” 나는 다은이의 인사에 단답만 하고 말았다. 부끄럽고 어색해서. 이럴 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잘 부탁해.” 내가 어색해하자 이어 나갔다. 웃으면서 말하는 다은이의 모습이 가을의 해바라기처럼 눈부셨다. 전혀 어색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 아이의 모습이 나와는 다르면서도 참 따뜻하고 좋았다.
그 후로 나는 용기 내어 다은이에게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같이 놀기도 하면서 친한 사이가 되었다. 언니로서 친한 동생을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해외여행으로 대만을 가게 되었다. 첫 해외여행이라 많이 설레였다. 그런데 첫 해외여행보다 나를 더 설레게 한 건 다은이와 여행 내내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낮에 다 같이 여행 일정을 다니면서 맛있는 것을 먹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일정이 끝난 후에 다은이와 같은 방에서 날 일, 맛있었던 거, 같이 찍은 사진 등을 함께 보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재밌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이 따듯하고 즐거웠던 시간들이었다. 
날이 거듭되면서 우리는 대화의 주제가 다양해졌다. 학교에서 지내던 하루, 전학을 온 이유, 살면서 힘들었고 어려웠던 일들 등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누군가와 이렇게 깊은 마음 속 대화를 해본 경험이 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다은이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였다. 대화 도중 다은이가 갑자기 고맙다고 이야기하였다.
“언니, 오늘 나 챙겨줘서 정말 고마워.” 항상 그랬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야. 언니로서 동생을 챙겨주는 거지. 너무 고마워하지 마.”
처음에는 그 말을 듣고 고맙다고 말하는 다은이가 마냥 귀여웠다. 그런데 여행 시간이 점점 흘러가면서 다은이도 나를 아침부터 살뜰하게 잘 챙겨주기 시작했다. 마치, 친구처럼. 
그리고 다은이가 든든한 존재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행 일정이 끝난 뒤 저녁 시간에는 나는 나의 고민거리도 마치 상담하듯이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상했다. 다은이는 분명 나보다 한 살 어린 초등학교 4학년 동생인데, 다은이가 왜 이리도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운 건지. 그리고 왜 동생이 아닌 친구처럼 느껴지는지 말이다. 
다은이와 나는 지금 같은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나의 궁금증은 지나온 몇 년의 시간 동안에 해결되었다. 우리가 지금까지도 우정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학교에 2학년이 나밖에 없어서 친구가 없다고 걱정할지도 모르겠다. 또는 우정을 경험할 일이 없이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염려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의 음악, 미술, 체육시간보다 더 걱정할 일이 아니다. 나에게는 한 살 어린 다은이와의 우정이 있기 때문이다. 다은이와의 우정이란 나이와 상관없다는 것을 현실에서 깨닫게 해주었다. 이런 다은이와 오래도록 깊고 따듯한 우정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요즘에는 문득 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내가 지금의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간다면 다은이와 같이 있을 수 없겠지. 그럼 나에게 친구, 우정은 없어지는 건가?
하지만 우정에는 나이도, 1명뿐인 학급도 중요하지 않다고 믿는다. 우정을 이미 경험하고, 그 의미를 아는 나의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나의 이런 마음만 있다면 좋은 친구와 우정은 또 어디에서든지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금상

15,000년의 우정을 수놓으며

정이안 / 백수중 3학년

우리 가족은 7번의 이사를 다녔고, 나는 5번의 전학을 다녔다. 기억나지도 않는 어린 시절부터 이리저리 집을 옮겨 다니며 살았던 것이다. 이렇게 조금은 독특한 삶을 살았다. 
따지고 보면 독특하다 할 만한 쪽은 우리 엄마다. 내 인생의 이사라 함은 전부 우리 엄마의 지휘 아래에 이루어졌다. 보통 한 집에서 오래 사는 게 일반적이지만 우리는 달랐다. 우리 집에는 2년 법칙이란 단어가 통용되는데 바로 2년 주기로 이사를 가기 때문이다. 
엄마는 집이 좁다는가 하는 이유로 24개월이 차오를 때면 살던 집을 떠나자 결심한 듯한 얼굴을 했다. 보통 이렇게 많이 이사를 다니면 아버지가 군인이냐는 질문도 종종 듣는데 우리 아빠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그 때문에 우리 가족은 아빠 직장을 가운데에 두고 그 주위를 공전하듯이 이동했다. 어렸을 때엔 뭐든 크게 느껴지니 아주 멀리 이사 온 줄 알았는데 바로 옆동네였던 일화도 있다. 
이렇게 규칙적이고도 반복적이었던 우리 집의 2년 법칙은 당시엔 나를 향해 큰 파도를 너울거리며 다가오는 해일 같았다. 그 거대한 파도 속을 걸어오며 우정이라는 메타포 앞에서 고군분투한 흔적들은 내게 고스란히 돌아온 어떠한 존재였다.
첫 전학은 아홉살 때였다. 방금 막 1학년을 마치고 친구들과 더 친해지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을 때 떠나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무척이나 내성적이어서 세상에서 발표가 가장 무서웠다. 그런 내게 전학이란 생소하다 못해 미지의 두려움과 같았다. 첫 전학의 전날 밤은 아직도 뇌리에 남는다.
‘안녕. 내 이름은 이안이야. 00초등학교에서 왔어. 내 취미는 그림 그리기고.’ 나는 메모장에 자기 소개말을 연필로 꾹꾹 눌러 적었다. 그리고 날뛰는 심장을 잠재우며 되뇌었다. 다행히도 첫 전학이란 의외로 즐거운 일이었다. 
친구도 생겼다. 그 애는 무척이나 사교적이어서, 전교생과 친구를 할 정도였다. 내가 두려워 한 발표도 그 애는 별 것 아니라는 듯 해냈다. 그 애는 내게 있어 혜성이었다. 긴 인생에 있어 잠깐 스쳐 지나간 존재였지만 그 꼬리의 깊은 균열은 아직도 내게 남아있다. 운 좋게도 우리는 점차 친해졌다. 관계란 나날이 발전할 수 있어서 서로를 단짝친구 혹은 ‘베프’라는 단어로 수식하기도 했다. 나는 그 애와의 우정 사이에서 많은 걸 습득할 수 있었다.
‘좋아하면 닮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마치 이때의 나를 가리키는 것 같다. 동경하던 모습에 한 발짝 다가간 나였다. 
우리가 헤어진 이유, 2년 법칙은 나를 향해 또다시 한번 물결 지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여느 때보다 자연스러운 두번째 전학이었다. 나는 성장한 내가 되었다. 사람들 사이로 나 자신을 천천히 녹여 자연스레 뒤섞이는 방법을 나는 이미 그 애와 함께하며 배웠다. 오히려 나를 당황시킨 건 그 애였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더니 죽어도 둘이서 죽을 것 같던 우린 점차 소원해졌다. 보다 큰 결심이 필요한 헤어짐이었다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그 애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며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난 그게 왜인지 질투가 났다. 그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 애가 나를 완전히 뒤집어 둔 것처럼 나도 그 애에게 있어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때의 난 그 애가 내 안으로 완벽히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나는 틀렸다. 그 애는 내게 들어온 적도, 나간 적도 없었다. 자신의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당시의 난 이 깨달음을 이해하기에 부족했다. 이렇게 두 번째 전학은 철저한 충격을 선사함으로서 막을 내렸다.
내가 생각하는 인생이란 마치 자수 같다. 우리가 살아가며 만나고 또 흩어지는 무수한 인연들이 모여 인생이라는 이름의 천 조각을 수놓는다. 특히 우정이란 실은 매우 유별나서 풀어도 풀어도 끝이 안보이는 미궁이었고, 들여다볼수록 심연에 빠질 것만 같은 어둠이었다. 굵을수록 쉽게 끊기고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얇은 실이 오히려 오래 유지된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우정 실의 특징이다.
사람은 입체적이다.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는 무한대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린 모두 각자의 단편선만을 세상 밖으로 비추고 있으니 말이다. 
우정이란 이러한 복잡하고도 끝없는 메타포로 이루어져 있어서 단짝이라 여길 수 있는 인연이 있다면 엄청난 행운인 것이다. 
 

스치듯 마주친 인연도 소중히 하고, 친밀할수록 서로 간의 신뢰를 지키는 게 인류가 살아가고 세상이 돌아가는 데 주축이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으니 말이다.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는 인류문명의 첫 증거가 15,000여년 전 인간의 넓적다리뼈에 있다고 답했다. 넓적다리뼈는 엉덩이와 무릎을 연결하는 인체의 가장 긴 뼈이다. 
현대 의술이 없는 사회에서 부상은 곧 죽음과 직결된다. 부상당했다는 것은 포식자의 먹이가 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부러진 넓적다리뼈가 다시 붙었다는 것은 다른 인간이 부상자의 곁을 지켜주었고 안전한 곳으로 옮겨 회복될 때까지 돌봐주었다는 사실의 증거라 그는 말한다. 
이 또한 하나의 우정이라고. 확실한 건 우리가 살아가는 근본은 우정이며 우정으로부터 문명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토록 소중한 우정의 실을 놓쳐버리는 일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놓친 우정의 실이 몇 가닥 될지는 수를 다 놓고서야 알 수 있다. 그래서 매 순간의 우정을 소중히 여기는 게 중요하다. 
비록 수많은 이사와 전학으로 우정을 놓친 나였지만 내 우정의 실도 끊임없이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아름답게 수놓아지고 있는 것이라 믿는다.


금상


비탈길에서

김전국 / 영광공고 1학년

신선한 바람이 좋은 날
물무산 행복숲 비탈길을
힘들게 올라갔다.
옥당골 영광의
아름다운 풍경이 보인다.

수많은
올라가야 할 이유를 생각하며
힘듦을 보내고 나니
비로서
두 눈에 내 고장 영광의
멋스러운 정취를 담았다.

힘든 비탈길 지나니,
이제 편한 내리막길이 앞에 있다.

순간을 참고 견디면
그 끝은 밝으리라.
꿈을 향한
오르막을 오르는 나를 다독이며
오늘도 힘차게 내딛는다.


은상

거울 앞에 선

김나경 / 해룡고 1학년

“지금이 몇 시인데 아직도 안자고 있어? 지금 노는 만큼만 공부하면 서울대도 갈 수 있겠다야. 됐고, 빨리 자.”
가족 모두가 잡든 새벽은 글을 써 내려가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 희미한 스탠드 불빛 하나에 의지해 필사할 때면 문장선 하나하나가 더 깊이 있게 느껴졌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필사를 끝마치고 일기를 쓰고 있었다. 
익숙한 적막 사이로 아슴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한순간에 문이 벌컥 열렸다. 엄마였다. 조용히 잠에서 깨 내 방에 들어온 엄마는 내가 새벽까지 놀고만 있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내가 무어라 변명도 하기 전에 잉크가 채 마르지도 않은 노트를 순식간에 가져갔다. 엄마는 한심스런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고선 방문을 꽝 닫고 나갔다. 
순식간에 노트를 빼앗긴 탓에 난 결국 침대에 몸을 뉘었다. 내가 마냥 노는 것도 아닌데 엄마를 향해 불만을 터뜨리듯 몸을 이리저리 뒤척였다.
어렸을 적부터 책을 좋아하던 나는 자연스럽게 글 쓰는 일이 좋아졌다. 글의 흐름따라 변하는 주인공의 감정이 곧 나의 감정이었고 주인공의 영웅적인 행동은 내 삶의 목표가 되어 나를 움직였다. 내가 쓰는 글 속 모든 인물은 조금씩이라도 나를 닮아 있었다. 
아마추어 수준의 글을 쓰더라도 그날의 내 감정을 가감 없이 담을수록 더 나를 닮아갔다. 글 속 모든 등장인물이 내 자신이었고 내가 곧 책 속 주인공이었다. 
우리는 거울에 비춰 보이는 것처럼 똑같은 생각과 행동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주인공의 꿈은 누구에게나 응원받지만 작가가 되겠다는 나의 꿈은 엄마에게조차 무시당하고 있었다. 난 내 앞에 서 있는 거울 속 주인공이 참 부러웠다.
별 의미 없는 발길질을 멈추고 한참을 눈감고 잠자리에 들려는데 슬며시 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감고 있어도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슬슬 감기고 있던 눈을 떴다. 방문에 기대 나를 바라보는 엄마는 무척이나 슬퍼 보였다. 엄마는 내가 아직도 안자고 있을 줄을 몰랐는지 꽤 놀라 보였다. 엄마는 내가 크게 눈을 뜨자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왔다.
“엄마는 네가 그냥 작가가 되고 싶다는 핑계로 노는 줄만 알았어.”
엄마는 내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엄마의 손에는 두시간전 내 손에서 뺏어간 노트가 들려 있었다. 노트를 향하는 내 시선이 느껴졌는지 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사실 오늘 엄마가 노트를 가져가서 한번 읽어봤거든. 오늘은 학교에서 무얼 했고, 슬펐을 때, 기뻤을 때가 솔직하게 드러난 네 일기 말이야. 그런데 내가 상상하던 너와 정말 다른거야. 게다가 요즘 들어서 일기에 부정적인 감정이 쓰여 있을 때마다 항상 드러나는 사람이 엄마더라고. 또, 네가 정말 기뻐 보일 때에는 항상 글을 쓰고 있었고.”
엄마는 말을 잇기 힘든지 잠시 숨을 골랐다. 엄마의 손에는 여전히 내 노트가 들려 있었다. 금새 감정을 갈무리했는지 엄마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실은 엄마도 꿈이 작가였던 적이 있었어. 지금은 아니지만, 너처럼 열정적이었을 때도 있었지. 그런데 엄마는 작가라는 꿈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무척 벅찼어. 아무리 써 봐도 실력이 잘 늘지 않았지. 그래서 엄마는 언제나 인상을 쓰며 글을 썼어. 글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는데, 너는 늘상 즐기면서 쓰고 있어서 네가 노는 줄만 알았어.”
엄마는 내게 노트를 돌려주면서 말을 끝나쳤다. 나는 노트를 받아들고 잔뜩 일그러진 표명의 엄마를 쳐다보았다. 거울 앞에서 마주 보고 있는 듯이 엄마와 나는 참 닮아 있었다. 한껏 찡그린 눈매와 크게 닫힌 입까지. 엄마는 나를 통해 옛꿈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마주친 시선 속에서 늘 느껴졌던 몰이해가 더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마주보고 있던 거울을 향해 미소 지으며 속삭였다.
“엄마,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이야기해준 덕분에 답답함도 많이 사라졌어요.”
엄마의 얼굴에 희미하게 미소가 떠올랐다. 서로를 쳐다보는 시선은 무척 따뜻했다. 어느새 우리는 서로의 품에 안겨 말없이 노트를 하나하나 넘겨보았다. 뚝뚝 끊기는 서투른 글의 흐름 속에서 엄마에게 건넬 한 마디를 찾는다.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