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언론과 정치권에 놀아나지 않는 검찰로 거듭나길

2005-10-20     영광21
김종빈 검찰총장이 사표를 내고 퇴임한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하다. 검찰총장의 사퇴를 전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최선이 아니었고, 적절하지도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또한 석연치 않은 것은 법무부 장관의 지휘를 수용한다면서 극약처방인 사퇴라는 수순을 밟은 것이다.

사실 강정구 교수의 발언에 대한 법적 판단은 법원에 맡기면 되었다. 전에부터 우리 사회에는 한국전쟁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주장들이 국내외 학계에 엄연히 존재해왔다. 크게 보면 강정구 교수의 해석도 그 가운데 한 부류일 뿐이다.

그런 그의 주장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논란거리가 된 것 자체가 어찌보면 우습다. 강 교수 개인의 주장이 무엇이든간에 그의 발언 하나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일개 교수의 사소한 주장으로 무너질 만큼 우리 사회가 허약하진 않다.

매일 제기되었다가 사라지는 수많은 주장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발언을 연일 대서특필한 일부 언론과 거기에 놀아난 정치인들에 의해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러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지금 중요한 문제는 강 교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편에 서있는 검찰의 문제가 더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막말로 강 교수 개인이 어떤 생각을 가졌든지 말든지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검찰이 어떤 가치와 정신을 갖고 있느냐는 것이다. 강 교수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동조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검찰이 가지고 있는 가치와 정신은 스스로 선택할 여지가 없이 나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의 본질은 시대가 변해도 변할 줄 모르는 검찰의 모습에 있다. 세계적으로 시대의 정신과 가치가 변하고 있는데 검찰은 조직 이기주의라는 두꺼운 껍질에 쌓여 전혀 변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듯 하다.

지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문을 일종의 정치적 싸움 수준으로 생각하는 것부터가 검찰의 잘못이다. 이번 사건은 특정 정권의 문제도 아니고, 여야의 문제도 아니다. 단지 시대정신에 발맞춰서 공안사건에서도 인신구속을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합법적 지휘권 행사를 했을 따름이다.

매우 단순하고 근본적인 일을 가지고 정권과 여당의 편에 선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호들갑을 떨고 있는 꼴이다. 오히려 시비를 일삼는 정치권과 언론의 놀음에 놀아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사안을 가지고 검찰이 그토록 반발하는 것을 그 누구도 검찰에 대해 간섭하지 말라는 주장으로 받아들이자. 그렇다면 검찰 또한 우리에게 절대적인 정당성을 갖고 있다는 전제를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보고 있는 검찰의 모습은 그렇지 못하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내세우면서 검찰총장 사퇴라는 초강수를 두면서도 자신들은 사표를 내지 않고 다음 검찰총장이 누가 되는가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는 검찰 간부들의 이중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격앙된 감정상태에서 벗어나 차분하게 생각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먼저 국가와 사회의 안정을 위해 검찰은 반성해야 하고, 언론은 당분간 침묵하는 편이 낫겠다. 또 정치권은 자숙하고 수양을 더 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