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등 너머 배워 이젠 기술자가 다 됐네요”
영광을 일구는 여성 / 한막동 남도광고
2005-10-27 박은정
행여나 지나는 행인들에게 피해가 될까 싶어 남편과 담벼락에 바짝 서서 간판제작에 몰두하는 한 씨의 간판을 다루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한 씨는 이름이 말해주듯 전북 순창에서 1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광고사업을 하는 남편을 만나 결혼해 서울에서 10년간 생활한 그는 당시 걸프전쟁의 여파로 사회 전체적으로 불황이 이어질 무렵 남편이 사업부도를 맞게 됐다.
이렇게 사업을 실패한 남편은 귀향을 결심했고 한 씨는 남편을 따라 영광으로 내려왔다. 그의 남편의 고향은 홍농이라고.
한 씨는 “시부모님이 얻어준 지금의 가게터에서 남편은 다시 간판 일을 시작해 직원을 두고도 일을 해 보았지만 워낙에 이쪽 일이 월급이 약하고 힘들다 보니 직원들이 오래 버티지를 못했다”며 “마음에 맞는 직원을 구하기고 힘들고 직접 일을 배워 남편을 도와 보자는 마음으로 간판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간판 일을 하게 된 동기를 밝혔다.
이렇게 직원을 두었을 때 나가는 인건비라도 절약해 보자는 욕심으로 간판 일을 배우기 시작한 한 씨는 “처음에 일을 배울 때는 실수도 많이 하고 남편에게 구박도 많이 받았지만 처한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극복하려고 시작한 만큼 인내를 갖고 꾹 참았다”며 “이렇게 시작한 일이 벌써 15년이 넘었고 지금은 설치를 제외하고는 간판과 관련된 모든 작업을 남편없이도 혼자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한 씨는 그에 다섯 배가되는 세월을 간판과 씨름했으니 실력을 가히 짐작할 수 있는 것.
“주위에서는 가게도 좁은데 넓은 곳으로 옮겨가라고들 해요. 그래도 이곳에서 이만큼 안정을 이루게 했고 작업을 할 수 있는 긴 골목이 있어 일하는데는 큰 지장이 없습니다”라며 혼자하기 힘든 작업을 도와주며 함께 사용하는 골목을 임대해 준 주변주민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한 씨.
이제 간판쟁이가 다된 그는 주문 들어온 간판을 만들기 위해 다시 작업장으로 향했다. 바로 옆 골목 그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