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식량이 무기가 되기 전에 무조건 지켜야 할 농촌
박찬석 / 본지편집인
2005-11-03 영광21
2003년 말 현재 농가소득은 총 2688만원이다. 이는 농업소득 1057만원(39.3%), 농외소득 938만원(35.0%)과 이전수입 691만원(25.7%)으로 이뤄졌는데 농가부채는 2662만원에 이른다.
형편이 이런데도 지난 10월 15일 현재 산지 쌀값은 80Kg 기준으로 14만1518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4.1%가 하락했다. 작년 수확기 평균가격 16만1630원과 비교해도 12.4%나 하락한 가격이다.
또 농가의 농작물수입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은 44%이고, 농작물 이외 수입을 포함한 농업 조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4%에 이른다.
이렇게 농가수입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쌀값 하락은 금년 3월 2일 국회에서 추곡수매를 폐지하는 양정제도 개편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정부는 추곡수매를 폐지하는 대신 공공비축제도와 쌀에 대한 소득보전 직접지불제를 도입하여 쌀값을 안정시키고자 했다.
이후 정부는 농민단체와의 간담회 과정에서 공공비축물량을 500만~700만석으로 예상하였다. 그러나 8월 17일 고위 당정협의에서 공공비축용으로 400만석을 확정했다. 지난 10월 1일부터 150만석 매입을 시작했다.
그러나 산지 쌀값은 폭락하기 시작했다. 농민들은 벼 야적 등 쌀값 하락에 항의하는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정부는 10월19일 100만석 추가매입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농민들은 정부의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쌀값 폭락사태는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0월 10일 일본 동경에서 열린 한국농민 초청 간담회에서 일본 농민대표가 증언한 내용에 따르면 이런 현상은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1993년 우르과이라운드 협상 과정에서 쌀 수입의 완전 자유화는 막았으나 연간 70~80만 톤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그런 후 1995년 식량관리법에 따라 쌀 제도가 바뀌고, 개정 식량법에 따라 쌀에 대한 보호정책이 폐지되고 나자 쌀값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고 한다.
2004년 대비 금년 쌀값이 30~40% 하락하였고, 니이카타현의 코시히까리 쌀의 경우 2만5000엔 하던 쌀값이 1만6000엔으로 하락하였다고 한다. 홋카이도도 쌀 전업농의 경우 1만2000엔 수준으로 하락해 50ha에서 1000엔 정도의 이익뿐이라고 놀라운 하소연을 하였다.
아오모리현의 경우 소수 농업생산법인을 제외하고는 도산 직전이다. 농민이 고령화되고 후계자가 없어 생산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여전히 쌀은 수입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결국 추곡수매란 제도가 있어야 수확기에 쌀값 안정판 역할을 그나마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한 셈이다. 정부가 쌀값안정은 물론 농가경제에 대한 대비책을 수립하지도 않은 채 WTO 대외개방과 관련하여 성급하게 추곡수매제도를 폐지한 결과, 지금처럼 심각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 상황에서는 농협RPC(미곡종합처리장)에서 작년의 추곡수매가 수준에서 쌀을 매입하지 않는다면 쌀값 하락을 도저히 막을 수 없다. 점차 식량이 무기화되는 시대에 이대로 쌀값 하락을 방치하는 것은 농업몰락을 초래하여 농촌경제를 피폐화시키고, 국가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