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경제논리에 우선하는 식량주권
2005-11-24 영광21
최근 추운 날씨 속에서도 농민들의 힘겨운 '아스팔트 농사'는 숨이 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여의도는 물론이고 각 지역의 고속도로 진입로에서 상경투쟁을 하고, 관청마당에 나락을 적재하는 등 장소와 방법을 뛰어넘어 350만 농민들은 대책없는 쌀협상 국회비준을 저지하기 위해서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따른 농산물 개방으로 인한 농업파탄으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진 농민들은 이번 쌀 재협상에 따른 쌀수입 추가개방을 막아내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는 농민들의 절박한 요구를 깡그리 무시한 채, 비준안을 본회의에 상정하여 비준안을 통과시키겠다고 거드름을 피우고 있다. 그동안 정부와 국회는 쌀 재협상을 재고하라는 농민들의 요구에 대해 '관세화유예가 안되면 2005년부터 자동적으로 관세화가 된다'는 숨넘어가는 소리를 하면서 협상을 서둘러왔다.
농민들을 위한 대책은 아무 것도 마련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들의 이익과 편리만을 위한 수순을 밟아온 것이라고 하겠다.
이는 쌀 재협상에 임하는 정부와 국회의 자세가 '농업붕괴를 막고 농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허울 아래 '쌀 추가개방은 불가피하므로 하루빨리 협상을 마무리하겠다'는 속내를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
정부와 국회는 쌀 수입개방을 서둘러 확대해 놓고도 '최선을 다해 협상하여 유리한 결과를 얻어냈다'는 가당찮은 거짓말을 하는 것도 부족하여 관세화가 유예된 10년 동안 농민들이 열심히 구조조정을 하여 경쟁력을 갖출 것을 주문하여 갈기갈기 찢긴 농심에 소금을 뿌리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말하는 농업구조조정이란 것을 따져보면 농업포기에 지나지 않는다. 도시민에게도 농지소유를 허용하여 농토가 경작에 이용되지 않도록 하면서까지 쌀 생산량을 축소해왔고, 농산물가격을 가까스로 지탱해온 추곡수매제를 폐지하고 공공비축제를 도입한 정부와 국회가 아니던가.
한마디로 역대정권의 농업정책은 말로는 농촌을 살린다고 하면서도 오히려 농업을 축소하고 탈농을 유도하는 정책을 추구하였다. 추가적인 쌀 수입개방은 앞으로 관세화와 관세감축으로 이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 결과로 쌀 생산량은 급격히 줄어들 것이고, 초국가적인 다국적 곡물기업의 독점권이 더욱 강화되는 쪽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사실은 눈을 감고도 알 수 있다. 게다가 예측할 수 없는 기후변화에 의한 환경재앙마저 겹친다면 제 아무리 높은 가격을 준다고 해도 쌀을 확보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농업포기는 식량주권의 상실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제 식량은 안보에 버금가고 주권에 해당된다. 여기에 식량을 경제논리로 다루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이 죽어도 농업을 포기하지 않는 까닭도 같은 맥락이다. 아무리 못난 바보라도 안보와 주권을 경제논리로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박찬석 / 본지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