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영광불갑산상사화축제 기념 인터넷 공모전 수상작

2024-11-07     영광21

은상

영광을 읽다 
이지혜 / 광주광역시 남구 

어저께는 비싼 굴비에다 밥 묵었네
밥이 술술 넘어가데그려
밥도둑이 따로 없당께

그랑께 법성포에 가면 본정통에
다리보다 더 큰 굴비가 떡 버티고 있더만
굴비하믄 영광이제
하믄 그라제
나도 요새 그놈에다 밥 묵네

밥우에 떡이라
고모시떡도 쫀득쫀득 얼마나 맛있는디
어떨 때는 밥도 안 먹고 송편으로 때울 
때도 있당께

아 거 뭐여
원불교도 거기서 태어났짠혀
거 모르긴 몰라도
천년 이천 년 갈 것이구먼

음마, 중 마라난타가 들여와서
영광에 있는 절 이름이 뭐제
갑이제, 불교의 갑 불갑사제
정말이지 신령스럽고 성스러운 빛이 있는
영광이제

상사화는 어쩌고
입구에서부터 불갑산 올라가도록
선혈이 낭자 혀
거 뭐시냐 꽃허고 잎사구가 
따로따로 핀다등만
상사병 들어 그렇게 이쁘다든디
그 병은 그렇티야
그리움이 온몸에 물들어서 그런디야

칠산바다 끼고 도는
백수해안도로는 또 어짜고
정자에 앉아 벌겋게 물든 바다만 봐도
처녀 적 생각이 나븐당께

아이고
벌써 밥때가 다 되어 부렀네
조구새끼에 영감 밥채려 주러 가야겠네.

 

 

 

꽃무릇 
강현숙  / 전남 화순군  

하루를 밀고 들어오는
금모래의 여백 속으로
발자욱의 숨소리
푸른 화석으로 덮여 있다

물안개 잿빛 바다 보듬고
하얗게 흩어지는 눈물방울들
미동 없는 너른 바위에 무명옷 입혀 준다

쓸려가 버린 그대의 등 푸른 줄기
부표처럼 떠도는가

단단한 낯섦이
벼랑 끝에 짜디짠 갈증의 기둥 붙잡고
빈 메아리만 보듬는다

수평선 위로 심긴 저 꽃봉오리
타오름에 굵은 실핏줄
일렁일렁 수면 위 돌고 돌아
굳어 버린 멍석 위로 붉은 넋 피어난다

한 닢 한 닢 밤으로 낙화하면
비릿한 갯내음으로 깊어 가는 이야기 
하얀 부레의 달빛에 진동한다.

 

 

 


상사화 
강문규  / 경상남도 진주시  

절기상 가을인데 날씨는 여름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고 작은 일에도 신경이 곤두선다.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그런 와중에 우리나라 상사화 3대 군락지 중 하나인 영광 불갑사에서 상사화축제를 하고 있단다. 아내와 같이 드라이브나 할 겸 꽃구경을 간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창 밖으로 지나가는 산야의 전경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어느덧 불갑사에 도착한다. 임시로 마련된 주차장에도 관광버스와 승용차들이 꽉 들어차 있고 많은 사람으로 붐비고 있다. 일주문을 통해 불갑사로 올라가는 길옆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고 나무숲 아래에는 듬성듬성 상사화가 피어있다. 
날씨는 덥지만 바람은 선선하다. 숲에서 뿜어나오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길을 따라 걷는다. 
가족 단위의 관광객이나 젊은 연인들이 알콩달콩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무척이나 정겨워 보인다. 
상사화는 물가를 따라 자갈이 많은 수풀 속의 낮은 곳에서 자란다. 주로 그늘에서 무리 지어 피어있으며 여러 종류의 색과 이름을 가지고 있다. 
잎이 없이 꽃대만 올라와 붉은색 노란색 흰색 자주색 등으로 핀다. 실제 꽃이 피어있는 시기는 4~5일 정도로 짧은데 각기 피고 지는 시기가 달라 최대 2주간 만개한 꽃을 볼 수 있다. 
  이 중 붉은 상사화인 꽃무릇은 매년 9월~10월에 꽃줄기 끝에 산형 꽃차례를 이루며 붉은색으로 피고 총포는 줄 모양 또는 피침모양이며 작은 꽃자루 가장자리에 물결모양의 주름이 있다. 6개의 수술은 꽃 밖으로 길게 나온다. 열매는 맺지 못하고 꽃이 떨어진 다음 짙은 녹색의 잎이 나오는데 이 잎은 다음 해 봄에 시든다고 한다. 
넓은 타원형의 비늘줄기는 여러 종류의 알칼로이드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독성이 있지만 이것을 제거하면 좋은 녹말을 얻을 수도 있다. 
또한 한방에서는 약재로 사용하는데 인후 또는 편도선이 붓거나 림프절염 종기 악창에 효과가 있다. 

상사화에는 전설이 있다. 옛날 부모에 대한 효심이 지극한 딸이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비의 극락왕생을 빌며 절에서 백일 동안 탑돌이를 한다. 스님이 여인에게 연정을 품는다. 불교에 귀의한 몸으로 말 한마디 못한 채 끙끙대던 스님은 여인이 집으로 돌아가자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만다. 이듬해 봄, 스님 무덤가에 이름 모를 풀꽃이 돋는다. 사람들은 잎이 지면 꽃이 피고, 꽃이 지면 잎이 나와 잎과 꽃이 서로 보지 못하고 그리워만 한다고 하여 상사화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단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멋쩍게 지나간 첫사랑이 생각난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였다. 나는 여자친구가 없었다. 친구들은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동급 여학생을 소개해 주었다. 그녀는 밝고, 명랑한 편이며 나는 융통성이 없고 고지식할 정도로 순수하였다고나 할까. 
그때는 휴대전화가 없을 때였다. 축제 전야제에 진주 성지 정문 앞에서 그녀를 만나자고 했던 일, 혹시 아는 사람을 만날까 싶어 어스름한 골목길만 골라 데이트를 하던 일, 중국집 짜장면을 먹고서는 돈이 없어 학생증을 맡겨 두고 그곳을 나왔던 일 등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하루라도 안 보면 보고 싶어 그녀 집 앞에서 서성이곤 했다. 
그후 나는 현장실습을 나가 방직공장에 다녔다. 그러다가 나에게 군입대 영장이 나왔다. 몇 번인가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답장이 없어졌고 그녀와는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되었다. 

내가 공기업에 입사하여 합천에서 주말부부를 하고 있을 때다. 진주 집에 온다고 버스를 타고 있는데 그곳에서 아이를 데리고 버스를 타는 그녀를 만났다. 시가가 합천이라고 했다. 너무 반가웠고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그녀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얼마 후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카페에서 차 한잔을 나누었다. 그녀는 그 당시에 자기를 좋아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나는 솔직히 많이 좋아했다며 내가 기다려 달라고 하면 그럴 마음이 있었냐고 되물었다. 
상사화의 꽃말은‘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 한다. 남녀 간의 애틋하고 간절한 사랑을 의미하여 이별한 연인들이 서로를 그리워하는 모습과 같다고 한다. 지난 세월을 뒤돌아본다. 어쩌면 붉게 핀 꽃처럼 이룰 수 있는 정열적인 사랑을 하면서도 그녀와 나는 순간의 자존심 때문에 서로 말 한마디 못 하고 각자 다른 길을 갔던 게 아닌가 싶다. 
흔히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듯.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선명하게 상사화 군락지 위로 내려앉고 있다. 간간이 진노랑 상사화와 제주 상사화가 몇 송이씩 꽃을 피우고 있지만, 긴 줄기 위에 꽃망울을 활짝 터트리는 잔치가 한창인 붉은 상사화의 모습에 더 마음을 빼앗겨 가던 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모두 앞다투어 사진을 담기에 바쁘다. 허리를 구부려 아름답게 물들어 붉게 피어있는 꽃을 들여다본다. 

올해는 날씨가 너무 덥고 비가 오질 않아서인지 꽃이 평년보다 늦게 피는 것 같다. 긴 줄기 끝에 작은 꽃봉오리만 맺혀있다. 아내와 오랜만에 온 여행인데 많이 아쉬웠다. 
사천왕문을 지나 천년고찰 불갑사 경내로 들어가니 고즈넉하고 아늑한 모습들이 참으로 평화롭다. 부처님께 우리 가족의 건강과 무사안일을 기원하고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온다. 
꽃구경하기엔 다소 늦은 시간인데도 축제장을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참 좋은 세상이다. 그간 너무 무심하게 살아왔던 것 같다. 상사화가 나의 첫사랑에 대한 어정쩡한 기억을 소환해 주었다. 처음이라 서툴러서 그랬겠지만 서로 간 의사소통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젠 나에게 주어진 여건이 조금 부족하고 힘들어도 내가 해 보고 싶었던 일들은 하면서 살아야겠다고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