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 고개 넘긴 할머니들과 어린 학생 6명의 이색 졸업식

세월의 무게 딛고 꿈에 그리던 학교생활 ‘아듀’ … 6년 동고동락한 고마운 동무와 동창

2025-01-16     영광21

■ 평생 배움의 한恨 푼 군서초 할머니들의 졸업식

 

군서초등학교

 

일제강점기인 1928년 9월15일 군서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한 이래 2025년까지 97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군서초등학교(교장 손향미)에서 지난 9일 특별한 제93회 졸업식이 열렸다. 
바로 6명의 졸업생 중에 늦깎이로 배움의 문턱을 넘어선 4명의 할머니가 있었다.
이날 졸업식에서는 어린 시절 한국전쟁, 보릿고개(가난)와 딸(여자)이라는 차별 등으로 배움의 기회를 잃어 평생 한恨으로 살아야 했던 김순덕(81), 장화녀(77), 박향임(76), 이선숙(75) 할머니 등 4명의 주인공은 쉽지 않은 6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졸업장을 받았다.

만학도 초등학생 어르신들의 졸업식장은 지역 여러 내빈과 졸업생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큰 감격의 눈물과 함께 축하의 열기로 가득 찼다. 
할머니들은 6년 전인 2019년 3월4일 무심한 세월의 무게를 딛고 그리도 동경했던 ‘학생’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학교 교문에 들어섰다. 
할머니들이 학교에 입학하게 된 계기는 평소 어머니의 못배운 한을 풀어들이기 위해 늘 고심하던 김순덕 할머니의 셋째 아들 정원식(여성항일운동기념업회 연구소 소장) 박사가 영광교육지원청과 군서초등학교에 여러 차례 입학문의와 상담에서 시작됐다. 
마침 학생수 감소를 걱정하던 학교 측은 할머니의 입학 소식에 두 팔을 벌려 환영했다. 

 

 

 

이윽고 김순덕 할머니의 입학 소식이 알려지면서 같은 동네(남계리)와 옆 동네(송학리) 어르신 다섯명이 학교 교문의 문턱을 넘게 됐다. 6명의 할머니 학생과 아동 학생 1명 등 총 7명이 입학했지만 2명의 할머니는 2학년 때 건강상의 이유로 배움의 길을 접어야 했다. 
이후 4학년 때 영광읍내에서 전학 온 여학생 1명과 함께 6명이 이번 제93회 졸업식의 주인공이 됐다. 
특히 할머니들과 입학을 함께하며 6년간 동고동락했던 김민건(13)군이 같은 반 할머니들의 재롱둥이자 인솔자이면서 동시에 수업 준비물을 알뜰살뜰 챙겨준 고마운 동무였다. 
또 할머니들에게는 지난 6년의 과정이 고된 농사일과 병행해야 했기에 몸도 고되고 아프지만 학교생활을 생각하면 아픔도 어느 순간에 사라진 것 같았다고 했다. 

 

 

 

할머니 학생들은 자식뻘 되는 교사와 어린 손자뻘 되는 어린학생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걱정도 많았지만 친손자·친할머니처럼 돈독한 관계로 지내며 도움과 배려 속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이들의 담임이었던 박정조 선생님은 “할머니 제자들은 해마다 제삿날 등 하루 정도 빼고는 개근상을 받을 정도로 학교생활을 잘한 모범생들”이라며 “체육, 컴퓨터, 영어, 체험, 수학여행 등을 누구보다 더 열심히 했다”고 말한다.
김순덕(군서면 남계리) 할머지는 한국전쟁과 보릿고개, 딸이라는 이유 등으로 배움의 기회를 놓쳐 평생 품은 한을 자식들 뒷바라지로 승화해 왔다. 아들 셋 중에 둘을 해외박사와 1명을 국내 석사로 키워낸 후 결혼까지 시키자 배움에 대한 아쉬움과 갈망이 생겼다고 한다. 
김 할머니는 늦게나마 깨우친 배움의 행복을 더 즐기고 싶어 전국 최고령 할머니 학생으로 인근 군남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다.
김순덕 할머니의 아들 정원식 박사는  “어머니가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졸업식의 주인공으로 우뚝 선 모습이 너무도 존경스럽다”며 “이제 더 어려운 중학 과정과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할 어머니의 소망이 꼭 이루어지길 기원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