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

데스크칼럼

2003-03-12     영광21
우리 민족은 일찍이 동족상잔의 서글픈 전쟁의 경험이 있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아픈 상흔을 치유하지 못하고 있기에 지구촌 곳곳에서 들끓고 있는 반전열기에 많은 국민들이 뜻을 같이 하고 있다.

더군다나 숱한 전쟁위협에 시달려온 국민들이 이제 반전평화의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는 마당에 정부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고 지원한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나마 표명한 것은 지극히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유엔결의 없이 이라크에 대한 무력사용 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는 가운데, 지난 3월10일 대통령 주재로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이 이라크와의 개전을 앞두고 우리 정부에 지지의사 표명, 의료지원, 난민처리 등의 지원을 요구해왔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에 대해 정부는 "유엔의 결의안 채택과정에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폐기를 적극 지지하고 한미동맹정신에 따라 의료, 공병 등 분야에서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 수준의 비전투병을 파병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는 그 동안 정부가 북핵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위기가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천명해온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또한 한반도에서 무력사용이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정부의 입장에 대다수 국민들도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까지 한반도에서의 전쟁불가 입장을 밝혀온 정부가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지지하고 비전투병 지원방침을 밝힌 것은 납득하기 힘든 모순적 태도이다.

우리 국민들이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요구하고 지지하는 것은 비단 한반도만의 평화를 원하기 때문이 아니다. 평화적 해결에 대한 국민적 지지와 요구는 전쟁이 평화를 결코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인간이성의 합리적 판단에 근거한 보편타당한 것이다.

우리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반대한다면, 당연히 다른 민족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전쟁에도 반대해야 할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라크 정부와 알카에다의 연관성, 이라크의 대량살상 무기 개발 증거, 미국에 대한 이라크의 위협 가능성 그 어떤 것도 증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개되고 있는 미국의 부당한 전쟁시도를 지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라크 사찰단이 밝혔듯이 미국 CIA가 제기한 이라크의 이동식 대량파괴무기 생산시설에 대한 증거가 없고 어떠한 시설물에서도 생물, 화학무기의 생산 또는 저장시설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라크는 현재 장기 미해결 무장해제에 관한 조치들을 적극적으로 취하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미국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폐기를 위해 이라크를 공격한다는 것은 명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현재 미국과 영국은 유엔 안보리의 결의 없이도 이라크 전쟁을 감행할 수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안보리 결의 없는 불법전쟁을 지원한다면 한국 정부는 국제법상 불법행위를 하게 되는 것이고 이라크전에서 대량살상행위가 발생할 경우, 한국 정부는 국제 인도주의법 위반국으로 국제형사재판소의 피소대상이 될 수도 있다.

유엔 안보리의 결의 없이 미국이 군사행동을 감행할 경우, 향후 국제사회의 분쟁은 유엔을 통해 중재하거나 해결하기는 거의 불가능해질 것이다. 정부가 유엔 안보리 결의 없는 이라크 전쟁을 지지, 지원하는 것은 안보리 무력화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평화를 지향하는 정부의 외교방침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동이다.

자위권 이외의 무력행사를 금지하는 유엔헌장에도 배치되는 이라크 전쟁은 승패와 무관하게 미국의 국제적 지도력에 심각한 훼손을 가져올 것이고, 유럽과 미국의 분열, 터키와 미국의 불협화음, 나토의 내분 등으로 국제사회에 커다란 혼란을 야기시킬 것이다.

이렇게 아무런 명분이 없는 전쟁은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의 입지와 위상을 위해서라도 당연히 거부되어야 한다.
박찬석<본지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