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륜과 지혜 바탕으로 황혼의 알찬 마무리 만들어 간다
경로당 탐방 21 / 염산남자경로당
2006-02-09 박은정
역대 회장들의 사진이 벽에 가지런히 걸려 있는 모습만으로도 역사를 가늠하게 하는 이곳은 40여년의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이렇게 대청마루를 거쳐 어르신들이 기거하고 있는 방을 들어섰다. 가장 나이가 적은 72세의 어르신부터 92세까지의 어르신들이 일년 내내 점심식사를 나누는 이곳은 주방을 따로 두지 않고 방 한쪽에 씽크대를 설치해 연로한 어르신들의 편리를 돕고 있었다.
주방 벽면에는 어르신들의 이름이 순서대로 적혀있는 표가 깔끔하게 붙어 있었다. 그것은 남자어르신들만 거주하는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바로 당번제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부장적인 시대를 살아온 우리들의 아버지인 그들이 감히 밥과 설거지를 한다는 것에는 그리 익숙하지도 용납도 안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시행 초기에는 몇몇 어르신들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얼마 후 모두 잘 따르며 현실로 받아드렸다고 한다.
정부의 지원금과 3,700평의 경로당 공동논에서 얻어지는 임대료, 자녀들과 지역 기관·사회단체의 지원 등으로 살림을 꾸려가고 있는 이곳은 어르신들의 알뜰한 운영으로 관내 학생을 선발해 장학금을 전달해 왔으며 매년 지역 초·중·고 졸업식에서는 학교의 추천을 받은 학생들에게 선행상을 수여하고 있다.
또 학생들의 방학기간에는 중·고등 학생을 대상으로 청소년예절교실을 열어 충·효·예의 기본을 교육하고 있다. 이 밖에도 주변 환경정화활동에 앞장서 봉사활동을 펼치는 등 지역의 크고 작은 영역에서 어르신들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다.
이렇게 모범적인 활동을 꾸준히 펼쳐오고 있는 이곳 경로당은 보건복지부장관, 도지사, 군수 등으로부터 표창을 받으며 모범 경로당으로 선정됐다.
9대 회장을 맡고 있는 김봉관(78) 회장은 “다른 노인정과 다르게 대부분 회원이 80대인 이곳은 정부에서 지원되는 소정의 경로수당으로 생활을 어렵게 해나가고 있다”며 “무조건 똑같은 조건의 동일한 지원보다는 개개인의 여건과 연령들을 잘 파악해 좀더 현실적인
차등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하며 변화하는 노인복지 정책을 요구했다.
그는 또 “‘10세 아동이 알면 100세 노인이고 100세 노인도 모르면 동자’라는 말처럼 가난한 시대에 태어나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경륜과 지혜를 지식의 기초로 삼고 후손에게 바른 가르침을 남기는 여생을 만들어 가자”며 황혼의 각오를 덧붙였다.
비록 남은 여생이 힘에 부치지만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남은 열정을 최대한 발휘하는 어르신들의 진지함에 머리가 숙여지는 그런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