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딸 역할 한꺼번에 할래요"

우리기관 친절도우미 - 군남신협 주 애 선 상무

2003-03-13     박청
군남신협(이사장 주대석)은 1972년에 창립하여 올해 31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영광에서 보기 드문 책임자 주애선(32)씨는 한마디로 톡톡 튀는 여자였다. 여자라기보다는 '상무'라는 호칭이 훨씬 잘 어울린다.

찾아온 고객과 한참동안 상담을 하고 나서 "어디서 오셨죠?" 하고 묻는다.

그녀는 직원들한테 늘 당부하는 말이 있다. '분야의 전문인이 되어라.' 그 말은 곧 금융계의 전문적 지식을 토대로 조합원들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직원들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지금도 주민들에게 편리한 대출을 해주고 있지만 앞으로는 더욱 더 친근한 관계로 유지해서 가족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애를 쓴다.

좀더 조합원들과 밀착된 관계가 되어 조합원 각 가정에도 심력을 다할 각오를 가지고 있다.

시골이라 자녀들은 객지에 있고 노부모만 생활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고 한다. 그런 조합원들한테는 딸 대신, 아들 대신 자녀의 역할을 한꺼번에 하는데 집에 온 편지까지도 들고 신협으로 달려와 그녀를 찾는다.

그녀는 지난 총회 때에도 조합원들에게 신협을 그리고 직원과 임원을 믿고 무슨 일이든 상의를 해주면 내 집일처럼 여기고 발벗고 나서서 처리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군남신협은 2002년에는 순이익금을 6,000여만원 냈고 조합원들에게 6%씩 배당금을 지불한 내실있는 경영을 해왔다. 조합원이 2,000여명이 조금 넘는다고 하는데 현재 자산은 120억원 정도로 튼튼한 은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좀더 많은 이익을 남겨 조합원들에게 되돌려 줄 수 있기를 틈틈이 생각하는 주애선씨.

그녀는 세상에 태어나 가슴 저밀만큼 보람을 느낀 일이 있다. 부인과 협의이혼을 하고 어디론가 몰래 훌쩍 떠나버렸던 모 조합원이 떠난 지 2년만에 찾아와 대출해갔던 금액을 상환했다고 한다.

아무도 모르게 떠났다가 찾아와 상환하면서 '군남신협 직원들처럼 정겹고 친절한 사람들이 없다'고 말하고 다시 어디론가 갔다고 한다. 너무나 흐뭇했고 '아직도 민심은 살아 있다'는 것을 체험한 그녀는 따뜻한 밥 한상 곱게 차린 집에서 대접해 보냈단다.

반면 2002년 몇몇 금융권들과 다른 신협이 퇴출됐을 때나 조합원 중에 조합에서 탈퇴하고 등을 돌렸을 때는 너무나 아쉬웠단다.

하지만 조합원들의 입에서 '군남에는 신협이 있다'는 말이 스스럼없이 나온다.

그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대출이 어려운 조합원들이 돈이 필요해서 상의를 할 때(신용상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그녀는 씨앗에 싹을 틔워주는 마음으로 두말없이 대출을 해 줘서 고비를 모면하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일명 '또순이'다.

이사장 이하 이사들이 합심해서 지역주민을 살려내는 일을 도맡아 한다.

그리고 그녀는 정부에서 농민들에게 좀더 관심을 갖고 농촌 살리기에 힘써서 살만한 농민이 될 수 있기를 늘 마음속으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