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뇨리지효과'에만 의지할 수 없는 미국의 현실
박 찬석/본지 편집인
2006-02-16 영광21
이는 화폐 주조를 통하여 얻는 이익을 뜻한다. 즉 돈을 찍으면 생기는 이익을 말하는 것으로 화폐의 교환가치에서 발행비용을 뺀 몫을 의미한다.
그래서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이런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이를 프랑스어로 '세뇨리지'라고 한다.
이 덕분에 미국은 무역적자와 외채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달러가 모자라서 고민하는 일은 없다.
1980년대 미국 달러화의 급격한 평가절하가 세계적 이슈가 됐고, 이 때문에 달러가치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리기로 합의한 '플라자협정'까지 나왔지만 아무도 미국의 '지불불능'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저 달러만 찍어내면 만사형통이었던 것이다.
옛날에는 왕이 화폐의 세뇨리지를 독식했고, 요즘은 중앙은행 즉 정부가 차지한다. 국제사회에서는 기축통화의 발행자인 미국이 세뇨리지를 챙긴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영국이 차지했고, 그후 일시적으로 미국과 독일 등이 이익을 나눠 갖기도 했지만 1990년대 들어 미국의 독식체제가 확고하게 굳어진 것이다.
이런 마술적인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 1999년에 유럽공동화폐인 '유로'가 발행됐지만 현재로서는 공동화폐임에도 불구하고 상당기간 동안은 세뇨리지의 배분을 주장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미국이 누리는 가장 큰 세뇨리지는 달러의 교환가치에서 발행비용을 뺀 단순차액이 아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외환위기나 지불불능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신용의 안정성일 것이다.
그래서 몇 년째 국제사회의 화두가 미국의 재정적자와 경상적자인 쌍둥이 적자에 있어도 당사자인 미국은 시큰둥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불균형'이라고까지 표현되는 쌍둥이 적자를 메우기 위해 미국이 끌어들인 부채는 천문학적 숫자인 2조5천억 달러에 이른다. 국내총생산의 20%를 훌쩍 넘긴 엄청난 액수인 것이다.
선진국 기준으로 보면 위험수준을 넘어 파산을 걱정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도 재무부는 계속 채권을 팔고 세계 각국은 미국 자산을 사들이는 데 여념이 없다. 아무도 미국의 지급불능을 우려하지 않는다.
세뇨리지란 말이 생겨난 것이 과거 중세때 군주가 어려운 재정을 메우려 금화에 불순물을 섞어 유통시킨 데서 온 말임을 실감하게 만드는 일들이 지금 우리 눈앞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경제의 불균형'이란 말은 달러의 지위가 크게 위협받고 있음을 짐작하여 알 수 있도록 표현한 것이다. 쉽게 말해서 중국의 최대 흑자를 미국의 최대 적자로 버티는 불균형 상태를 더 이상은 '달러 찍어내기'로 지탱하기 힘들어졌다는 의미이다.
이젠 다른 나라가 미국 국채나 회사채를 사주지 않으면 달러는 붕괴하는 구조가 굳어졌다. 오랫동안 세계경제가 미국에 편중된 기형성장을 한 결과로 생긴 이런 구조가 단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란 점이 비극적 현실이다.
과거에도 미국이 적자구조를 조정할 때마다 세계는 큰 홍역을 치렀다. 1980년대 일본의 자산거품과 장기침체, 1990년대 중남미와 아시아 나라들의 금융위기 등은 달러 자산의 가치 조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문제였다.
이 문제의 교과서적인 해법은 막강한 위력을 가진 미국이 총수요를 억제하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다.